대졸 신입사원 한 명당 5,959만6,000원.
2013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55개 기업을 조사해 계산한, 대졸 신입사원 한 명을 교육·훈련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이었다. 평균 교육·훈련 기간은 18.3개월. 육군 현역병 복무 기간과 거의 같은 시간이다. 연수원과 강의실에 든 교육비만이 아니었다. 신입이 업무에 익숙해질 때까지 지급한 임금과 사회보험 기업 부담금 등 간접노동비용까지 합산한 수치였다.
기업이 그만한 비용을 감수한 데에는 채용한 사람이 오래 남아, 투입된 시간과 비용을 숙련과 성과로 되돌려줄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그 무렵 대기업 인사팀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맡던 임홍택은 회사에 들어오기 시작한 90년대생들을 보며 글을 썼다. 2014년 무렵 자료와 원고를 정리했지만, 책으로 나온 것은 4년 뒤인 2018년이었다. 『90년생이 온다』가 사회적 화제가 되기 전부터 90년대생은 이미 직장 사회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90년대생은 몇몇 조직에서만 마주하는 낯선 신입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해해야 할 새로운 세대로 떠올랐다. 기업이 신입 한 명을 길러내는 비용을 계산하던 무렵, 회사에 들어온 이들은 야근과 회식, 선배의 지시처럼 조직이 당연하게 여겨온 일들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기업은 신입을 길러내는 시간을 계산기 위에 올렸고, 신입은 회사가 요구해온 순응을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입을 길러내던 회사
그러나 지금의 채용 구조를 이해하려면 90년대생보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업이 사람을 뽑고 길러내는 방식은 한국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형성됐고, 외환위기를 거치며 크게 달라졌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농어촌을 떠나 서울과 수도권, 공업도시로 향했다. 공장에서는 사람의 노동력이 성장의 핵심 자원이었고, 1990년대 이후 정보화가 본격화되면서 사무실에서는 사람의 지식과 숙련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산업이 확장될수록 기업은 필요한 사람을 확보하고, 조직 안에서 쓸 수 있는 인력으로 길러내야 했다. 한 번 뽑은 사람을 오랫동안 고용하며 숙련시키는 방식은 기업에도 합리적이었다.
산업화와 정보화가 이어지는 동안 공채는 필기시험과 면접으로 끝나는 제도가 아니었다. 회사는 같은 기수의 신입들을 연수원에 모아 집체교육을 하고, 공장과 영업 현장을 함께 돌아보게 했다. 신입들은 회사의 역사와 사훈을 배우며 조직의 구성원으로 길러졌다. 대규모 공채와 단체 연수가 결합된 방식은 한국 기업의 독특한 신입 육성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일부 기업은 신입사원 교육에 산악훈련과 행군 같은 극기훈련까지 동원했다. 힘든 과정을 함께 견디며 동기 사이의 결속과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키우려는 목적이었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말까지 쓰이던 시절, 입사 동기의 유대는 직장생활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선배의 지시에 군말 없이 따랐고, 내 일이 끝났더라도 팀의 일이 남아 있으면 모두가 함께 늦게까지 남는 것이 직장생활의 당연한 규범으로 여겨졌다. 회사는 장기고용과 승진, 임금 상승의 전망을 제공하고 직원은 충성과 장시간 노동으로 응답했다. 힘의 균형이 대등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회사와 직원 사이에는 나름의 암묵적인 교환관계가 있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뒤
그러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이 암묵적인 교환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경영상 이유에 따른 해고는 1997년 법제화됐고, 외환위기 과정에서 시행 시점이 앞당겨졌다. 1998년에는 파견근로자보호법이 제정됐다. 명예퇴직과 인력감축, 외주화와 비정규 고용이 확산하면서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은 빠르게 무너졌다.
직원은 회사가 더 이상 평생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기업은 정규직 채용 실패의 위험을 더 크게 의식하게 됐다. 한 번 채용한 사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고용관계를 끝내는 데에는 여전히 법적·조직적 부담이 따랐기 때문이다.
기업은 핵심 인력을 오래 붙잡는 데 힘쓰는 한편, 신규 채용에서는 인턴과 수습 등을 활용해 지원자를 더 신중하게 검증했다. 외주화와 파견 활용에도 익숙해졌다.
회사가 평생고용의 약속을 거두자 개인도 평생의 헌신을 거두기 시작했다. 더 나은 임금과 복지, 더 큰 기회를 찾아 회사를 옮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 됐다. 회사의 이름과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 자신의 경력과 삶의 조건을 우선하는 흐름도 강해졌다.
2020년대 초중반 직장에서는 젊은 직원들의 반응을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는 이른바 ‘3요’로 묶어 설명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들은 일을 맡기 전에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왜 자신이 맡아야 하는지를 확인하려 했다. 이전에는 지시하는 사람의 직급과 연차가 업무의 이유로 받아들여졌다면, 새로운 세대는 업무의 목적과 책임 범위를 이해한 뒤 움직이려 했다. 복종의 기준이 권위에서 설명과 납득으로 옮겨간 것이다.
기업의 기성세대는 요즘 신입들이 참을성과 애사심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신입들은 상사가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순응부터 요구한다고 느꼈다. 기업이 마주한 문제는 조직문화를 둘러싼 세대 간 충돌만이 아니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가르친 신입이 이제 겨우 일을 맡길 만해졌을 때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청년 세대의 조기 퇴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3년 경총 조사에서 이미 기업의 73.9%가 수습사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조기 퇴사는 현업 배치 이전과 현업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구간에 집중됐다. 기업이 교육비를 지출했지만 그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전에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회 초년생과 저연차 직원의 이직을 애사심 부족으로만 말할 수는 없다. 평생직장이 희미해진 시대에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회사를 옮기는 것은 개인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평생고용의 약속은 약해졌지만, 사람을 뽑아 가르치는 비용과 조기 퇴사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기업은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뽑기 전에 더 오래 검증하기 시작했다.
수습 기간이 채용한 뒤 사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면, 채용연계형 인턴은 그 판단을 정규직 고용 이전으로 앞당긴 방식이다. 이제 채용 과정은 일을 잘할 사람인지뿐 아니라, 일을 익힌 뒤에도 남아 있을 사람인지까지 확인하는 절차가 됐다. 기업이 신입을 뽑아 가르치며 확인하던 시간은 점차 채용 이전의 단계로 옮겨갔다.
신입인데 경력이 필요하다
‘신입’이라는 이름으로 입사하는 사람의 이력도 달라졌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025년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가운데 121개사를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이 2024년에 뽑은 대졸 신입 가운데 28.1%는 이미 직장 경력이 있었다. 이른바 ‘중고 신입’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상반기 한 민간 채용 플랫폼에 올라온 공고 14만4,181건을 분석한 결과, 경력직만을 대상으로 한 공고는 82.0%였고 신입만 뽑는 공고는 2.6%에 그쳤다.
왜 이렇게 많은 기업이 신입보다 경력직을 찾을까. 산업의 특성과 업황, 직무별 인력 수급 등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다. 그러나 경력은 업무 수행 능력뿐 아니라 조직에서 일해본 경험과 적응 가능성을 가늠하는 유효한 자료가 된다.
특히 경력직은 이전 동료나 상사를 통한 평판 조회도 가능하다. 평판 조회가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널리 활용되는 것도 기업이 경력을 단순한 근속연수보다 검증 가능한 업무 기록으로 본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력을 요구하는 흐름은 아르바이트 시장까지 번졌다. 카페와 음식점, 행사장 등의 일부 구인 공고에는 같은 업종에서 일한 경험을 요구하거나, 아예 ‘경력 필수’를 내건 사례까지 등장했다.
AI가 파고드는 첫 경력의 자리
채용시장 곳곳에서 경력을 요구하는 일이 일상화된 지금, AI라는 재난급 태풍까지 몰려오고 있다. 한국은행 연구진은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줄어든 청년 일자리 21만1,000개 가운데 20만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보서비스업, 출판업,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 전문서비스업 등에서 청년 고용 감소가 두드러졌다. 한국은행은 AI가 경력이 적은 청년층의 정형화된 업무는 상대적으로 쉽게 대체하는 반면, 경력에 기반한 암묵지와 사회적 기술이 필요한 업무에서는 보완적으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9,000개 늘었고, 그중 14만6,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속해 이러한 세대별 차이를 보여줬다.
AI 노출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청년 고용 감소가 모두 AI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기 둔화와 기업의 채용 축소, 산업구조 변화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AI가 저연차 업무에 먼저 들어오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회의록을 정리하고, 자료를 찾아 초안을 만들고, 데이터를 분류하고, 기본적인 분석을 하는 일은 그동안 신입이 업무의 맥락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기업은 점차 그런 업무를 AI에 맡기면서도, 사람을 채용할 때는 그 일을 이미 해본 경험을 요구한다. 경력을 요구하는 자리는 늘어나는데, 경력을 처음 쌓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생산 현장에서는 로봇이 이미 앞서 들어왔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제조업의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1,220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공장 안에서는 로봇이 반복 작업을 맡고, 사무실 안에서는 생성형 AI가 초안 작성과 자료 정리, 기초 분석을 대신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의 AI 호황이 반도체 대기업과 그곳의 기존 숙련 인력에 이익을 집중시키는 반면, 중소기업과 하청업체 노동자는 그 성과에서 소외되고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문은 더 좁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기업 내부자의 강한 고용보호가 신규 진입자에게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는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도 함께 지적했다.
이 변화는 대규모 해고보다 신규 채용 감소로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고용관계를 끝내는 것보다 채용을 보류하는 편이 쉬운 기업에서는 퇴사자를 충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인원이 서서히 감소한다.
KDI 조사에서도 AI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인 기업들은 재직자 조정보다 신규 채용 축소를 더 많이 예상했다. KDI는 현재의 노동시장 경직성이 지속될 경우 과도한 자동화와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르면 2030년 현재 형태의 일자리 약 90%에서 직무의 90% 이상이 기술적으로 자동화 가능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직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일자리에서는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경력 초기의 일자리에서는 자동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곳은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서는 입구다. 가장 먼저 좁아지고 있는 곳도 그 입구다.

그 ‘양질의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부도 첫 경력의 위기를 알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오래전부터 청년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말해왔다.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는 일을 배우고 첫 경력을 만들 수 있는 자리이자, 아직 미숙한 초년생을 받아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2026년 4월 발표된 청년뉴딜은 약 8,000억 원을 투입해 청년 10만 명에게 직업훈련과 일경험, 구직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이다. 공공부문 2만 명과 민간부문 3,000명 등 총 2만3,000명에게 일경험 기회를 제공하고, 참여 이력을 정부 시스템에서 관리해 공식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 역시 정책의 초점을 ‘첫 경력’을 만드는 데 맞춘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반도체와 국가 AI컴퓨팅센터,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앞세우며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청년에게 첫 경력의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한편, 기업이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는 산업 전환에도 박차를 가하는 희한한 모양새다.
국가의 미래 성장전략은 필요하다. 반도체와 AI 인프라 투자는 수출과 세수, 생산성을 키울 수 있다. 기업이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을 도입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모습만 보면, 그 성장은 예전처럼 수많은 청년이 열정과 패기를 쏟아낼 자리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제공하는 몇 달간의 일경험이 실제 채용시장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경력과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다. 기업 안에서 사라지는 첫 경력의 자리를 정부의 단기 사업이 얼마나 대신할 수 있을까.
청년의 첫 일자리 감소는 고용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 만 19∼34세 청년의 54.4%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과거 부모 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첫 일자리를 얻지 못해 부모의 집을 떠나지 못하는 자녀 세대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고, 그 이동이 산업과 도시를 키우던 한국 성장의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경력자를 요구하는 자리는 늘고, 첫 경력을 만들던 초급 업무는 AI가 대신하며, 신입을 뽑는 문은 좁아지고 있다.
모두가 청년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아직 경력이 없는 청년을 받아 일을 가르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길러낼 그 ‘양질의 일자리’는 앞으로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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