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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나무들은 끝내 좋은 장작은 될 수 없었을까

mindofwoodman 2026. 6. 20. 12:57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회사 단톡방에 인천 서구 원창동 화재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관리행정부서에서는 해당 기사를 공유하며 부서별로 소화기 점검 등 소방 순찰을 실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6월 16일 새벽 인천 서구 원창동 공장 밀집 지역에서 난 화재였다. 17개 업체, 공장·창고 건물 25개 동이 탔고, 큰 불길이 잡히기까지 열한 시간여, 완전히 꺼지기까지는 약 스무 시간이 걸렸다. 소방당국은 샌드위치 패널 구조, 좁은 이격거리, 그리고 목재 등 가연물의 다량 적재가 연소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했다. 기사 내용 중 익숙한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목재 등 가연물이 다량 적재돼 있어 급격한 연소 확대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공장단지 화재로 25개 동이 불탔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나는 목재회사에 다닌다. 화이트 오크, 월넛, 부빙가, 이페 같은 하드우드 특수목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다. 하드우드는 참나무, 느티나무, 월넛 같은 활엽수 계열 목재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다. 이름처럼 모두 단단하고 무겁지는 않지만, 우리가 주로 다루는 하드우드 특수목 중에는 조직이 치밀하고 묵직한 수종이 많다.

 

물론 목재는 불에 탄다. 그러므로 ‘목재 등 가연물’이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목재가 공장이나 창고 안에 많이 쌓여 있고, 불이 옮겨붙을 조건이 갖춰져 있다면 화재를 키우는 연료가 될 수 있다.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목재업계 안에서 오래 일한 사람에게 그 표현은 적지 않은 차이들을 한 단어로 뭉뚱그린 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목재라는 말 안에는 합판보드류도 있고, 다루끼나 한치각 같은 소단면 각재도 있고, 팔레트도 있고, 제재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도 있다. 반대로 수종과 무늬와 밀도와 용도에 따라 선별해 쓰는 특수목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목재냐 아니냐’보다 어떤 종류의 목제품이냐이다. 합판보드류는 넓고 얇은 판상재라 불길이 표면을 타고 번지기 쉽다. 게다가 합판, MDF, PB 같은 보드류는 얇은 단판이나 목재 섬유, 목재 입자를 합성수지 접착제로 눌러 만든 목질 재료다. 불길 앞에서는 목재 자체만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접착제, 판 사이의 틈, 모서리와 잘린 단면까지 불을 키우는 조건이 된다.

 

건설이나 인테리어 현장에서 흔히 쓰는 다루끼나 한치각 같은 소단면 각재는 또 다르다. 대개 침엽수 계열 수종들로 만들어진 가볍고 작은 각재라서 불이 붙기 쉽다. 반면 부빙가나 이페 같은 고밀도 하드우드는 어지간해서는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국내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이 소나무 중심의 단순림을 활엽수와 침엽수가 섞인 혼효림으로 바꿔 조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활엽수는 소나무 같은 침엽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 붙기 어렵고, 숲이 한 가지 수종으로 이어져 있을 때보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십 수년 전 국내에 캠핑 열풍이 불었다. 주말이면 캠핑 장비를 실은 차들이 줄지어 교외로 향했고, 대형마트 매대에서도 캠핑용품들이 제법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리 회사 공장 안으로 낯선 손님들이 간간이 들어왔다.

 

“혹시 캠핑용 장작도 파세요?”

 

회사 밖 도로가에는 ‘유림목재’라는 대형 입간판이 서 있었다. 손님들은 그 간판을 보고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목재회사니까 당연히 나무 장작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반인에게는 나무가 곧 목재이고, 필요한 목재가 곧 장작일 수 있다. 목재업계 안에서는 화목용 장작과 건축 내외장용 목재, 일반재와 특수목이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이런 차이를 알기란 꽤 어렵다.

 

어느 날 몇몇 젊은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목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투리 목재들을 캠핑용 장작으로 팔면 어떻겠냐고 했다. 젊은 직원들은 손님이 직접 찾아와 묻는다는 건 수요가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게다가 공장 한켠에 있는 목욕탕 욕조만 한 철제함에 가득 쌓여 자리만 차지하던 자투리 목재를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오래된 시니어 직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막내 직원이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뜻밖이었다.

 

“우리 회사 목재들은 잘 안 타는 하드우드 계열 수종들이 많아서 그 자투리 목재들이 장작으로는 적당치 않아.”

 

그 말은 괜한 반대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목재를 다뤄온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목재라는 재료의 성질이었다. 그래도 젊은 직원들이 직접 해보겠다고 나서자, 겉으로는 별 관심 없어 보이던 상사들도 그냥 지켜보자는 눈치였다.

 

젊은 직원들은 자투리 목재를 직접 태워보기로 했다. 드럼통을 반으로 자른 듯한 모양의 캠핑용 화로대를 하나 사왔다. 날을 잡아 일과가 끝나면 공장 마당에서 회식을 하면서 직접 확인해 보자는 계획이었다. 회식 메뉴는 당연히 고기였다.

 

드디어 다가온 회식날, 해가 기울 무렵 젊은 직원 두 명이 먼저 공장 마당으로 나갔다. 화로대를 설치하고, 그동안 모아둔 하드우드 자투리 목재들을 옆에 쌓아두었다. 토치도 준비했다.

 

처음에는 자신 있게 하드우드 자투리에 토치 불꽃을 갖다 댔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표면이 조금 거무스름해질 뿐이었다. 계속 불꽃을 들이밀었다. 역시 불이 붙을 기미가 없었다.

 

얼마 후 직원 한 명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웃음이 섞여 있었다.

 

“와, 진짜 불붙이기 힘드네요. 자투리 목재에 토치로 계속 불을 가해도 붙을 기미가 안 보여요.”

 

공장가동일지를 보고 있던 부장님이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제재부에 가서 침엽수 기스리 쫄대 몇 개 골라서 가져와봐. 더미 위쪽에 쌓인 기스리들은 엊그제 비 맞아 젖었을지도 모르니 아래쪽을 뒤적거려 잘 마른 녀석들로 골라야 해. 축축한 나무는 연기만 많이 나고 잘 타지를 않아.”

 

기스리는 우리끼리 쓰는 현장말이었다. 두께 38밀리나 45밀리짜리 건조 판재의 폭을 맞추려고 양쪽 엣지를 켜낼 때 떨어져 나오는 길고 얇은 쫄대 죽데기를 그렇게 불렀다. 일본어로 나무 쫄대를 뜻하는 ‘기즈리(木摺り)’에서 온 말이라고 들었다. 사전식으로는 죽데기와 가깝고, 공문서식으로는 제재부산물에 속하겠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은 그냥 기스리라고 불렀다.

 

예전에 캐나다 목재회사로 출장을 갔을 때 이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적이 있다. 말로 설명이 잘되지 않아 메모지에 펜으로 기스리 모양을 그려 보여줬다. 캐나다 직원은 그림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Oh, offcuts.”

 

잘려 나간 조각이라는 뜻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기스리라 부르던 것들은 그곳에서는 오프컷이었다. 이름은 달랐지만 가리키는 것은 같았다.

 

제재부에서 가져온 기스리를 짧게 부러뜨려가며 하나씩 화로 안으로 던져 넣었다. 동그랗게 구긴 신문지 뭉치도 함께 넣었다. 다시 토치를 대고 불을 댕겼다.

 

이번에는 달랐다. 신문지가 먼저 검게 오그라들더니 작은 불꽃을 냈다. 그 불꽃이 잘 마른 침엽수 기스리 쫄대의 모서리를 물었다. 부채질 바람에 조금씩 불길이 살아났다. 신이 난 직원들이 하드우드 자투리를 화로에 잔뜩 올렸다.

 

그러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자투리에 불이 옮겨 붙기도 전에 침엽수 기스리 쫄대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버렸다. 조금 전까지 자잘한 불길을 만들던 쫄대들은 금세 하얗게 식었고, 하드우드 자투리들은 화로 안에 그대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목재라고 다 장작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얇게 켜진 기스리는 공기와 닿는 면이 많아 쉽게 불이 붙었다. 반대로 두껍고 조밀한 하드우드 자투리는 표면만 거무스름해질 뿐이었다. 불이 붙으려면 그저 표면이 그을리는 정도를 넘어, 제 몸을 태울 만큼 충분히 달아올라야 한다.

 

실제로 목재의 착화와 탄화에 관한 연구 자료는 적지 않다. 수종과 밀도, 함수율, 공기와 닿는 면적은 불이 붙는 시간과 타는 속도를 바꾼다. 밀도가 높은 하드우드일수록 속까지 타들어가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이페처럼 물에 던지면 가라앉을 정도로 돌처럼 무거운 수종은 그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난다. 그날 토치 불꽃 앞에서 하드우드 자투리가 그토록 버텼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스리를 더 가져온 젊은 직원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신문지 구긴 뭉치들을 넣고, 기스리 쫄대를 계속 부러뜨려 넣고, 불길이 충분히 자란 다음 하드우드 자투리를 하나씩 올렸다. 바쁘게 부채질하고 입바람도 세차게 불어 넣었다. 불길이 커지면 자투리 목재를 넣었다. 그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그렇게 하드우드 자투리 목재가 제대로 불타오를 때까지 대략 삼사십 분이 걸렸다. 드디어 사각망 불판에 첫 고기를 올렸다. 임계점을 넘어 한껏 달아오른 자투리 목재들은 묵직하고 일정한 복사열이 오래도록 뿜었다. 고기를 다 구워 먹고도 숯에 남은 열기로 코펠에 라면까지 넉넉히 끓여 나눠 먹었다.

 

공장 마당에서 회식을 하며 젊은 직원들은 목재가 저마다 다르게 탄다는 사실을 배웠다.

 

늦은 밤이 돼서야 여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여야 했던 회식이 끝났다. 화로를 가득 채운 재를 보자 하드우드 자투리 목재를 장작 상품으로 만든다는 건 그저 자투리를 상자 가득 채워 매대에 올려두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게 보였다.

 

고민 끝에 판매용 포장 박스에는 하드우드 자투리만 넣지 않고 잘 마른 침엽수 기스리 쫄대도 짧게 잘라서 함께 넣기로 했다. 먼저 기스리로 불길을 키우고, 그다음 하드우드에 불을 옮기는 걸 염두에 둔 방법이었다.

 

자투리 장작 상품에 처음 붙인 이름은 ‘화목한 화목’이었다. 불을 피우는 나무라는 뜻의 화목(火木)이면서,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든다는 뜻의 화목(和睦)이기도 했다. 그날 공장 마당에 모여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건배를 외치던 추억이 떠올려준 이름이었다.

 

젊은 직원 중 한 명이 캠핑을 즐기는 주변 지인들에게 자투리 장작을 선물했다. 얼마 뒤 그는 지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회사에 전했다. 지인들이 캠핑장에서 저녁에 고기를 구우려고 불을 피우다가 아주 혼이 났다는 것이었다. 본인들은 불이 좀처럼 붙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데, 마트에서 사 온 시판용 장작을 쓰는 옆자리 일행들은 고기 익는 냄새를 풀풀 풍기며 맛있게 먹고 있으니 약이 오르기도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이 자투리 장작은 고기 구울 때 쓰는 장작이 아니라, 식사를 마친 뒤 불멍할 때 넣는 나무라는 설명도 달았다. 이름은 ‘불놀이야’로 바뀌었다.

 

그 뒤로 캠핑 유행이 더 번졌는지 시판용 장작을 만드는 업체가 늘었고, 온라인 배송으로 쉽게 받아볼 수 있게 됐다. 그러자 회사로 들어오던 장작 문의는 자취를 감췄다. ‘불놀이야’는 자연스럽게 직원들 회식 때 꺼내는 전용 장작처럼 남았다. 이제 그 일은 오래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단톡방에 올라온 원창동 화재 기사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목재 등 가연물이 다량 적재돼 있어 급격한 연소 확대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목재는 탄다. 맞다.

 

그런데 불 붙이기가 여간 까다로운 나무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