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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브이로그 314편에서 반복된 세 단어, 처음·시키다·혼자

mindofwoodman 2026. 6. 12. 16:03

 

쉬고 있지만 쉬지 못하는 청년들

 

‘쉬었음 청년’이라는 말이 있다. 쉬고 있다는 뜻이지만, 그 시간은 휴식과 거리가 멀다. 채용 공고를 뒤지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다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티는 시간은 마음을 쉬게 하지 못한다. 이름은 ‘쉬었음’이지만, 실제로는 일터로 들어가기 전의 대기이거나 다시 밀려나지 않기 위한 유예에 가깝다.

 

이 문제를 단순히 일하기 싫은 청년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2030세대 ‘쉬었음’ 인구는 71만 7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후 가장 많았다. 경총은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 이탈한 청년층 규모가 70만 명을 상회함에 따라 국가 성장잠재력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2030세대 쉬었음 인구 가운데 83.4%는 과거 취업 경험이 있었다. 쉬었음 청년의 대다수는 노동시장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일터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취업 경험이 있는 이들 중 47.7%는 최근 1년 안에 직장이 있었다.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다.

 

최근 1년 안에 직장이 있었던 청년들의 퇴직 사유 가운데 ‘작업 여건 불만족’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일하는지, 배울 수 있는지, 버틸 수 있는지가 청년을 다시 노동시장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들이 들어갔던 일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누가 일을 가르쳤고, 누가 방치했는가. 회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시간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일자리는 멀어지고, 빚은 늘고, 혼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한 사람을 방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은 한 가지 이유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무너지기도 한다. 위급할 때 연락할 사람, 무너질 때 붙잡아줄 관계가 사라진 사회에서 고립은 조용히 깊어진다.

 

문제는 ‘쉬었음 청년’이 일할 의지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들어가도 버틸 수 있는 일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회사에 들어가면 무엇을 배우게 되는지, 누가 나를 이끌어주는지, 실수했을 때 다시 시도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청년은 방 안에서만 헤매는 것이 아니라, 채용시장 안에서도 헤맨다.

 

그 어렵게 얻은 직장 안에서도, 신입은 다시 혼자가 되고 있다. 회사에는 들어왔지만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모른다. 인수인계 파일은 있지만 맥락은 없다. 업무 메신저에는 지시가 쌓이지만,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다. 물어볼 선배는 바쁘고, 상사는 결과를 기다린다. 신입은 회사 안에 들어왔지만, 일터라는 세계에서도 다시 고립된다.

 

처음, 시키다, 혼자

 

최근 한 연구는 유튜브에 올라온 중소기업 퇴사 브이로그 314편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2020년 2월부터 2026년 2월까지 게시된 영상이었다. 재직 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 퇴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입사 1년을 채우지 못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유가 단순히 연봉이나 회사 규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퇴사자들이 가장 자주 언급한 것은 상사, 동료, 선배와의 관계였다. 성장 기회와 교육 부족도 주요한 이유로 나타났다.

 

조직 적응과 관련해서는 ‘처음’, ‘시키다’, ‘혼자’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나타났다. 이것은 단순한 키워드가 아니라 신입이 놓인 처지를 압축하는 말에 가까웠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 매뉴얼이나 사수의 충분한 설명 없이 업무를 맡는다.

 

옆에서 같이 해보는 사람 없이 혼자 처리해야 한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하면 되는지, 막히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모른 채 일이 먼저 내려온다. 신입에게 절실했던 것은 거창한 회사의 비전보다, 당장 맡은 일의 방향을 함께 잡아줄 선배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퇴사 브이로그는 자발적으로 올라온 기록이고, 시청자를 의식한 자기 서사라는 한계도 있다. 모든 중소기업 신입의 경험을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용히 적응해 자리를 지키는 신입도 있고, 퇴사하더라도 영상을 남기지 않는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자료가 눈길을 끄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인 퇴사 설문은 정해진 질문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응답자는 회사가 미리 나눈 항목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르고, 때로는 짧은 문장으로 보충한다. 반면 퇴사 브이로그는 누가 정해준 양식에 맞춘 답변이 아니다. 퇴사자가 자신의 시간과 언어로, 분량의 제한 없이, 회사에서 겪은 일을 풀어놓은 기록이다. 그래서 314편의 영상에서 ‘처음’, ‘시키다’, ‘혼자’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나온다면, 그것을 개인의 하소연으로만 넘길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회사 안에 남지 않은 말들이 회사 밖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 퇴사 브이로그는 단순한 감정 토로가 아니다. 회사 내부의 공식 기록이 포착하지 못한 경험이 바깥에서 증언되는 현상이다. 회의록과 결재록에는 남지 않았던 말들이 퇴사자의 영상 속에서 뒤늦게 드러난다. ‘처음’, ‘시키다’, ‘혼자’라는 단어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한 사람의 푸념이 아니라, 회사가 설명하지 못한 교육 실패의 흔적일 수 있다.

 

이런 외부 기록은 지금도 직장인 커뮤니티와 기업 리뷰 사이트에서 쌓이고 있다. 블라인드 같은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회사가 스스로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늘도 공유된다. 기업 리뷰 사이트에는 연봉, 복지, 조직문화, 상사와 동료에 대한 평가가 남는다. 그 말들이 언제나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익명 공간에는 과장도 있고 오해도 있다.

 

그러나 회사 안에서 오간 말과 판단이 내부에만 갇혀 있을수록, 사람들은 바깥의 비공식 기록에 더 귀를 기울인다. 회사가 신입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스스로 말하지 못하면, 그 기록은 결국 퇴사 브이로그와 직장인 커뮤니티, 기업 리뷰 사이트의 글로 바깥에서 작성된다.

 

연구에서 말한 ‘연결의 부재’는 바로 이런 현실을 가리킨다. 동료, 선배, 상사와의 관계가 끊겼다는 말은 단순히 친한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처음 들어온 조직에서 내가 어디에 기대야 하는지, 누구에게 물어도 되는지, 어떤 기준으로 일을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뜻이다.

 

퇴사 브이로그 314편에 반복된 단어는 ‘처음’, ‘시키다’, ‘혼자’였다.

 

선배는 있었지만 멘토는 있었는가

 

과거의 회사들도 이 문제를 그냥 두지는 않았다. 연수원을 짓고, 신입사원 연수와 직무교육, OJT를 운영했다. 신입에게 직무를 수행하는 방법과 조직의 위계 안에서 생활하는 법을 익히게 해야 한다는 인식은 강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가치관이 다른 세대들이 회사 안으로 들어오면서, 기존의 방식은 거칠고 권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요즘 신입은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술자리 푸념을 넘어 세대 담론이 됐다. 1990년대생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퍼졌고, 기업과 기관들은 젊은 세대의 언어와 감각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흐름 속에서 ‘리버스 멘토링’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선배가 후배에게 배우는 방식이었다. 젊은 직원에게 소비 트렌드와 디지털 감각을 배우겠다는 시도는 빠르게 퍼졌다. 배우려는 태도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기업은 젊은 세대에게 배우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젊은 세대가 회사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다. MZ세대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은 빨리 퍼졌지만, MZ세대에게 일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만큼 깊게 이어지지 않았다.

 

리버스 멘토링의 유행이 잦아든 자리에는 온보딩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들어왔다. 요즘 기업들은 신입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든다. 웰컴 키트를 주고, 오리엔테이션을 열고, 회사의 비전과 핵심가치를 설명한다. 버디, 메이트, 멘토링, OJT, 커피챗 같은 말도 낯설지 않다. 예전의 수련회나 회식보다 훨씬 세련된 언어다. 강제로 끌어들이기보다 부드럽게 적응시키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입이 자기 자리로 돌아와 첫 업무를 받아 드는 순간,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 일의 방향을 함께 잡아줄 선배 한 사람이 곁에 있는가. 업무만 넘어갔는가. 아니면 그 일을 이해할 기준과 물어볼 사람까지 함께 주어졌는가.

 

이 질문은 결국 선배라는 이름과 멘토라는 역할의 차이로 이어진다. 한국 직장사회에는 선배라는 이름은 흔했지만, 후배의 경험 속에 멘토로 남은 사람은 충분했을까. 후배들은 선배 세대를 때로 ‘꼰대’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자, 한때 기존 조직문화에 저항했던 세대도 후배들에게 ‘젊은 꼰대’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어느 세대가 더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배라는 위치가 저절로 멘토의 역할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왜 많은 선배들은 후배에게 안정적인 멘토로 기억되지 못했을까.

 

한때 기존 조직문화에 저항하던 세대도 이제 회사 안에서 후배를 맡는 중견 실무자가 되었다. 예전에는 평가받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일을 평가하고 가르쳐야 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후배에게 건넨 일의 기준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

 

세대마다 선배도 있었고 상사도 있었다. 그러나 후배가 막혔을 때 길을 물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시행착오를 후배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꿔주는 사람, 실수를 꾸짖기 전에 기준을 설명해주는 사람은 충분했을까.

 

그렇다고 선배들에게 쉽게 “멘토가 되어라”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길을 배웠다기보다, 스스로 부딪히며 버텨온 사람들이다. 일정은 밀려오고, 보고는 쌓이고, 본인의 성과도 만들어야 한다. 신입에게 시간을 쓰는 일은 당장의 생산성으로 잘 환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을 설명하는 사람보다 일을 빨리 넘기는 사람이 더 효율적으로 보이는 조직이 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개인의 선의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신입에게 선배가 없었다는 데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선배가 있었다면 그가 무엇을 했는지, 회사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지가 남아 있어야 한다. 신입이 방치됐는지 교육받았는지는 퇴사자의 기억 속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회사 안에서 오간 설명과 판단도 어딘가에는 남아 있어야 한다.

 

누가 사람을 키웠는지 남아야 한다

 

멘토를 배정했다는 사실과 멘토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다르다. 온보딩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것과 신입이 실제로 적응했다는 것도 다르다. 회의를 열었다고 기준이 전달된 것은 아니다.

 

유튜브에 본인 스스로 ‘○○ 전문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그 분야의 전문가로 대중에게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간판이 아니라 그 아래에 무엇이 쌓였느냐다. 시간이 지나며 콘텐츠가 쌓이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내용과 태도와 판단을 가늠할 때 채널의 실체가 드러난다. 이름을 내건 것과 인정받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사 안의 직급은 멘토 자격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차장이나 부장이라는 직급, 오래 근무했다는 사실이 후배를 잘 가르쳤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선배라는 이름은 연차가 만들어주지만, 멘토라는 이름은 후배의 경험 속에서만 만들어진다. 무엇을 가르쳤는지, 어떤 판단을 보여주었는지, 후배가 막혔을 때 어떻게 길을 짚어주었는지가 흔적으로 남아야 한다. 좋은 말 몇 마디로는 부족하다. 회의 자리와 결재 시간에서 오간 말들이 축적된다면 조직은 어떻게 달라질까.

 

조선에는 권력자의 말과 판단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었다. 사관은 왕을 대신 통치하지 않았다. 다만 왕과 대신들의 말과 판단을 남겼다. 기록은 사람을 당장 바꾸지는 못해도, 함부로 말하고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남는 말은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오늘의 회사에도 회의는 있다. 상사와 구성원이 업무를 논하고, 누군가는 회의록을 쓴다. 결재 과정에는 지시와 판단의 흔적도 남는다. 겉으로 보면 조선의 사관이 왕과 대신들의 말을 기록하던 일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다른 것은 그 기록이 어떻게 쓰이느냐다. 실록은 훗날 평가의 자료가 되었지만, 회사의 회의록과 결재록은 대개 제한된 사람에게만 머문다. 그러니 어떤 상사가 구성원에게 감정을 쏟아낸 것인지, 누가 들어도 수긍할 만한 기준을 설명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후배를 방치한 상사와 후배를 키운 선배가 같은 성과표 안에 섞여버린다.

 

지금은 기록과 공유가 그 어느 때보다 쉬운 시대다. 상사도 구성원도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회의는 녹음할 수 있고, AI는 회의록을 정리할 수 있으며, 정리된 내용은 사내 게시판이나 협업 도구에 공유할 수 있다. 공개 범위는 회사가 정하면 된다. 사내에 한정할 수도 있고, 익명화해 교육 자료로 쓸 수도 있으며, 공개 가능한 내용은 바깥에 내놓을 수도 있다.

 

물론 모든 회의록과 결재록을 무조건 바깥에 공개하자는 뜻은 아니다. 회사의 기밀은 지켜야 하고, 개인의 사생활과 동의 문제도 가볍게 다룰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설명과 판단을 아무 흔적 없이 닫아두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기록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니다. 기록하고 공유하기가 지나치게 쉬워진 시대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남기고 확인하려는 조직의 태도다. 기록을 남기는 기술은 쉬워졌지만, 사람을 키운 말과 사람을 밀어낸 말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만큼 자라지 못했다.

 

회사 안에서 벌어진 일이 바깥으로 터질 때, 우리가 듣는 말들이 있다. 은폐, 축소, 늑장 대응, 책임 회피, 폐쇄적 조직문화. 제때 드러나고 설명됐어야 할 것들이 닫힌 채 쌓이다가 사고나 갈등으로 번진 뒤에야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신입을 키웠는지 방치했는지도 다르지 않다. 회의는 열리고, 결재는 올라가고, 지시는 내려가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을 키우는 설명이 있었는지, 사람을 밀어내는 말이 있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실전 노하우와 명확한 피드백을 전해주는 사수는 신입의 첫 계단이 된다.

 

이런 감각은 젊은 세대의 사수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한 채용 플랫폼 조사에서 Z세대 구직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수로 꼽은 것은 막말이나 갑질보다 ‘성과를 가로채는 사수’였다. 반대로 가장 선호한 사수는 실전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해주고, 명확하게 피드백해 주는 사람이었다. 결국 문제는 친절한 선배가 있느냐만이 아니다. 누가 후배의 일을 자기 성과로 가져갔고, 누가 후배가 배우도록 곁에서 기준을 보여주었는지가 남느냐다.

 

후배를 키운 선배는 소문으로만 떠돌고, 사람을 방치한 상사가 성과자로 남기도 한다. 사람을 가르친 일도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멘토링은 미담으로 흩어지지 않고, 상사를 평가하는 근거이자 조직의 지식 자산이 된다. 반대로 후배를 키우지 못한 방식도 성과 뒤에 숨지 못한다. 기록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그 기록이 후배가 일을 배우는 데 쓰였는지, 조직이 사람을 어떻게 키웠는지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이 기준은 회사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 안의 성장 기준이 보이지 않으면, 회사 밖의 청년은 스펙이라는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기업이 원하는 역량은 높아진다는데, 정작 회사 안에서 어떤 사람이 배우고 성장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면, 불안은 시장으로 흘러간다. 자격증을 따고, 자기소개서 문장을 다듬고, 면접 답변을 외운다. 취업 준비는 노력의 시간이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기준을 향해 계속 쌓이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중소기업과 구직자 사이의 미스매치도 여기서 커진다. 회사는 ‘성실한 사람’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성실함이 실제로 어떤 업무 태도와 질문과 성장 과정으로 나타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구직자는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원하지만, 그 회사에서 누가 누구를 어떻게 키우는지는 알기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채용이 이루어지고, 입사 뒤에야 ‘생각한 것과 다르다’라는 느낌이 든다.

 

중소기업 퇴사 브이로그 분석을 다룬 보도에서는 중소기업의 인사관리 역량을 보완할 맞춤형 온보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맞는 말이다. 멘토링, 상담, 직무 적응 등 온보딩 프로그램은 필요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스스로 신입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은 결국 회사 안의 시니어들이다.

 

웰컴 키트가 있었는지, 멘토가 배정됐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신입이 막혔을 때 곁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가다. 회사가 신입을 방치하지 않았다고 말하려면, 제도의 이름이 아니라 매일 신입 곁에 쌓인 상사와 선배의 설명과 판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AI 시대의 첫 계단

 

이 미스매치는 AI 시대에 들어서며 더 날카로운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보고서 검토, 자료 조사, 문서 초안처럼 신입이 처음 맡아보던 일들이 AI로 넘어가고 있다. 숙련자에게는 생산성 향상이지만, 신입에게는 일을 배우던 첫 계단이 좁아지는 일일 수 있다.

 

일을 배우는 사람은 처음부터 큰 판단을 맡지 않는다. 작은 자료를 찾고, 초안을 만들고, 선배의 수정 의견을 보며 기준을 익힌다. 보고서 한 줄이 왜 지워졌는지, 문서의 순서가 왜 바뀌었는지, 고객에게 어떤 표현을 쓰면 안 되는지 배우며 일의 감각을 익힌다. 그런데 그 낮은 계단들이 자동화되면, 신입은 어디서부터 일을 배워야 할까.

 

그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요즘 졸업식 축사에는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 AI 시대를 두려워하지 말라, 변화를 기회로 삼으라. 그러나 사회로 나가려는 청년들에게 그 말은 때로 격려보다 경고에 가깝게 들린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막연한 격려가 아니다. 들어가면 실제로 배울 수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다.

 

그 근거는 웰컴 키트나 멘토 배정표에서 오지 않는다. 신입이 막혔을 때 옆에 앉아 길을 짚어준 사람의 말, 그리고 그 말이 다음 사람에게 이어질 수 있게 남겨진 기록 속에서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그 신입 곁에, 그날, 누가 있었는가.

그는 일을 넘긴 사람이었는가, 길을 보여준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회사는 그날의 말과 판단을 보여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