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의존할수록 조직의 허리가 약해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AI가 초급자의 업무 적응을 도울 수 있지만, 조직 안에서 숙련이 쌓이는 과정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우리 회사 신입과 저연차 직원들이 떠올랐다.
AI는 자기소개서를 다듬고, 면접 예상 질문을 만들고, 보고서 형식을 잡아주고, 이메일 문체까지 고쳐준다. 낯선 업무 앞에 선 사회초년생에게 AI는 분명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바로 그 편리함 때문에, 신입 시절 시행착오를 겪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배워야 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진단은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그 기사의 논리가 궁금해졌다. 정말 AI가 신입의 성장 경로를 약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진단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나 조사 결과가 있을까. AI와 대화를 이어가며 먼저 그 부분을 확인했다.
근거는 있었다.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의 연구처럼 AI 노출도가 높은 직무에서 초기 경력 노동자의 고용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었고, 생성형 AI 확산으로 신입·초급 직무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보는 기업 조사도 있었다. 반대로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고객지원 업무에서 AI 도구가 초보자와 저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였다는 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결론은 단순하지 않았다. AI는 신입을 무조건 약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었다. 잘 쓰면 배움을 도울 수도 있다. 문제는 AI가 신입의 시행착오와 선배의 코칭을 건너뛰는 방식으로 들어올 때 생긴다. 신입이 보고서의 문장을 고치는 법은 배웠지만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는 모른다면, 이메일 형식은 갖췄지만 상대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는 모른다면, 겉으로는 일을 하는 듯 보여도 안쪽의 숙련은 얕을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기사들을 AI에게 하나씩 건네며 문제를 더 넓혀 갔다. 어떤 기사에서는 직장인들이 AI 답변을 검증하느라 오히려 더 지친다고 했다. AI로 생산성을 높이라는 회사의 압박, AI에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도 함께 나왔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AI가 사무실 책상 위의 소프트웨어를 넘어 데이터센터, 공장, 로봇, 생산설비, 차량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신입이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에 머무르지 않는다. AI는 숙련자에게 더 많은 검증과 책임을 요구할 수 있으며, 중간관리자에게 생산성 압박과 대체 불안을 동시에 안길 수 있다. 더 나아가 공장과 설비와 현장까지 AI 전환의 흐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면, 이 문제는 특정 세대나 직무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변화가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이미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숙련자는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증하고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신입을 붙잡고 가르칠 여력이 줄어든다. 신입은 선배와 부대끼며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잃고, AI가 정리해 준 그럴듯한 결과물에 익숙해진다. 겉으로는 일 처리가 빨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 깊은 숙련을 쌓아 중간급 리더로 자라나는 경로는 희미해진다.
그 이야기를 놓고 AI와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사실 이것은 내가 AI를 활용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자주 하는 방식이다. 나는 AI에게 처음부터 “뭐에 대해서 써봐”라고 시키지 않는다. 대화 몇 마디 나누다 곧바로 초안을 쓰게 하지도 않는다. 내가 쓰려는 글의 의도와 주제에 맞춰, 미리 순서대로 준비해 둔 기사와 대화문, 생각의 조각들을 먼저 건넨다. 글의 맥락이 충분히 잡힐 때까지 대화와 질문을 이어간다.
처음에는 기사들의 논리적 근거를 확인했고, AI 시대의 조직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대화가 멈칫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제 어느 정도 맥락이 잡혔니?”라고 묻자, AI는 “거의 선명해졌어”라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AI가 아직 핵심에 닿지 못했다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 내가 쓰려는 글은 기사에 대한 찬반이나 AI 위험론이 아니었다. 그래서 AI에게 말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하나씩 물어보라고.

그때부터 대화의 방향이 바뀌었다. AI는 먼저 물었다. 내가 말하는 차세대 리더는 어떤 사람인지. 직원들이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좋은 글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 글에 대해 선배와 동료들은 어떻게 피드백하는지. 왜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험이 먼저여야 하는지. 왜 AI보다 선배에게 먼저 물어야 하는지. 질문은 하나씩 이어졌고, 나는 그때마다 우리 회사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장면들을 꺼내 답했다.
보통 회사에서는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보고를 받고, 내용을 검토한 뒤, 결재란에 서명한다. 우리 회사에도 업무 확인과 지시는 있다. 다만 나는 그 시간을 되도록 결재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1:1 멘토링이라고 부른다. 회사 안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차담회’라고 부른다. 딱딱한 결재 시간이 아니라,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업무와 경험을 함께 되짚는 시간이라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결재 시간에는 도장이 찍히지 않는다. 대신 직원의 스마트폰 녹음 버튼이 켜진다.
내가 1:1 멘토링을 담당하는 신입 및 저연차 직원은 네 명이다. 네 명의 소속 부서는 모두 다르다. 영업, 생산, 관리처럼 각자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니 대화 주제도 매번 달라진다. 어떤 날은 고객 응대 이야기를 하고, 어떤 날은 생산 현장의 도구 이야기를 하고, 어떤 날은 회사 안의 동선이나 정리 방식 이야기를 한다.
1:1 대화의 장점은 깊이다. 그 직원이 지금 어디서 막히는지, 어떤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어떤 경험이 부족한지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만 남기 쉽다는 점이다. 영업부 직원에게 해준 이야기를 생산부 직원은 듣지 못하고, 관리부 직원에게 설명한 내용을 다른 부서 직원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에게 멘토링 내용을 녹음해도 좋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렇게 하라고 독려하는 편이다. 녹음한 내용을 나중에 텍스트로 변환해 본인 블로그에 올리는 직원들도 있다. 대화가 지나가면 기억은 흐려지지만, 기록으로 남기면 다시 볼 수 있다.
가끔은 농담처럼 이런 말도 한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 가장 친한 지인에게 녹음 파일을 들려줘도 좋다고. 내 말이 차담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편적으로 타당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직원들이 회사에서 이상한 말을 듣고 다니는 셈인지 확인받는 재료로 써보라는 뜻이다.
말은 가볍게 하지만, 그 안에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다. 멘토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상사의 말이 자동으로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록은 후배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말하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나도 가끔 다음에 쓸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직원들에게 그때 녹음한 내용을 다시 받아본다. 대개는 음성 파일 그대로가 아니라, 직원들이 다시 꺼내 보기 쉽도록 텍스트로 변환해 둔 문서 파일이다. 대화는 지나가면 흐려지지만, 텍스트가 되면 다시 찾아볼 수 있다. 그 문서를 읽다 보면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말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신입과 저연차 직원들의 적응을 돕는 온보딩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나는 직원들에게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하게 했다. 말하자면 업무 기록을 쌓아두는 포트폴리오형 SNS다. 그 대신 딱딱한 정례 보고 체계는 줄이고, 회의 소집도 최소화하려 애쓴다. 보고를 잘하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간보고가 중요하다는 말도 누구나 한다. 그러나 본인이 왜 보고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면 그 말은 오래가지 않는다.
업무를 블로그에 글로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장황하게 말로 설명해야 한다. 과정 없이 결과만 올리면 선배가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른다. 설명이 자꾸 필요하다면 본인이 쓴 글이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직원은 그 불편을 겪으며 스스로 깨닫는다. 다음에는 더 구체적으로, 더 자주, 진행 단계를 글로 남겨야겠다고 말이다.
블로그에 업무 내용을 올리면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직원들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서로 이웃으로 연결되어 있다. 새 글이 올라오면 알림이 뜬다. 누군가 읽고 나면 글 아래에 좋아요를 누른다. 때로는 댓글로 의견을 남기고, 더 깊이 이야기할 내용은 다음 1:1 멘토링에서 다시 꺼낸다.
예전 결재란의 서명이 “검토했다”는 표시였다면, 우리 회사에서는 블로그 글 아래의 좋아요가 때로 그 역할을 한다. 물론 좋아요 하나가 결재 도장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 읽었다는 흔적은 남긴다. 글쓴이는 자기 기록이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직원들에게 처음부터 멋진 글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턴이나 신입에게는 글을 쓸 때 따라갈 순서를 알려준다. 먼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을 쓴다. 그다음 선배에게 질문한 내용과 들은 답을 적는다. 이어서 인터넷 검색이나 AI로 조사한 내용을 덧붙인다. 마지막에 본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쓴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경험한 사실이 먼저 있어야 글이 허공에 뜨지 않는다. 선배에게 들은 내용이 있어야 문서에는 잘 남지 않는 회사 안의 암묵지가 글 안으로 들어온다. 검색이나 AI 조사 내용이 있어야 외부 지식과 연결된다. 마지막에 자기 생각을 써야 단순한 행위 나열에서 벗어난다.
글쓰기 습관이 어느 정도 잡히면 기승전결이든 육하원칙이든 자유롭게 쓰게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유롭게 쓰라고 하면 대부분은 하루 동안 한 일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데 그친다. '무엇을 했다'와 '무엇을 배웠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무엇을 들었다'와 '왜 그 말이 중요한지 알았다'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건너는 훈련이 글쓰기다.
좋은 글의 기준도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집에 있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처럼 우리 회사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읽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은 글이라고 한다. 업무 글은 멋진 문장을 겨루는 글이 아니다. 필요한 내용을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하는 일이다.

신입과 저연차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도 있다. 되도록 현장에서 발로 뛰라는 것이다. 영업부서라면 손님과 부딪히며 소통과 환대를 배워야 한다. 생산부서라면 도구와 기술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 관리부서라면 회사를 한 바퀴 더 돌며 개선할 곳을 살펴야 한다.
처음 요리를 배우는 사람에게 레시피는 큰 도움이 된다. 재료 목록이 있고, 순서가 있고, 시간이 적혀 있다. 그러나 레시피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기름이 적당히 달궈졌는지 소리로 먼저 아는 법, 어느 냄새가 올라오면 불을 줄여야 하는지, 어느 순간을 넘기면 고기가 질겨지는지, 소금 한 꼬집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마늘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법은 레시피에 적혀 있지 않다.
직접 재료를 고르고, 요리해 먹어보다 보면 어느 날은 싱겁고, 어느 날은 너무 짜고, 어느 날은 재료를 조금 태우기도 한다. 그렇게 몇 번을 해봐야 조금씩 알게 된다. 오래 해본 사람 옆에 서 있으면 그 감각은 더 빨리 전해진다. 그 사람이 무심코 손목을 꺾는 각도, 재료를 써는 두께, 냄비 뚜껑을 여는 타이밍, 불을 줄이기 전 잠깐 냄새를 맡는 습관 속에 레시피 바깥의 지식이 들어 있다.
회사 일도 비슷하다. AI는 업무의 레시피를 빠르게 정리해 줄 수 있다. 보고서 형식, 이메일 문체, 회의 준비 순서, 고객 응대의 기본 문장까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레시피 바깥의 감각까지 대신 익혀주지는 못한다.
전화기 너머 고객이 “목재가 필요하다”라고 말해도 그 말이 합판인지, 방부목인지, 집성판인지, 벽면 마감재인 스페이스월인지 바로 알 수 없다. 고객의 언어와 업계의 언어 사이를 오가며 묻고 들어야 한다. 사무실에서 쓰는 주문장 한 줄도 현장에 들어가면 다르게 보인다.
건조 과정을 거친 목재의 폭과 두께, 길이를 맞춰보고, 어떤 규격으로 켜야 자재 손실이 줄어드는지 확인해 봐야 숫자 뒤의 일이 보인다. 관리 업무도 마찬가지다. 도면 위에서는 소화기가 충분히 배치된 것처럼 보여도, 현장을 걸어보면 적치물에 가려진 것은 없는지, 누가 다른 자리로 옮겨둔 것은 아닌지, 급할 때 바로 찾을 수 있는 위치인지가 보인다.
결국 손님과 말을 섞고, 도구를 만지고, 회사 안을 걷고, 선배에게 묻고, 그 경험을 글로 남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에게 업무 관련 사항은 AI보다 선배에게 먼저 물으라고 말한다. AI는 인간이 온라인에 올려놓은 지식을 방대하게 학습한 전대미문의 도구다. 그러나 직장과 가정의 오래된 경험담, 몸으로 익힌 감각과 판단까지 충분히 배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선배 세대는 여전히 온라인 기록에 익숙하지 않고, 설사 익숙하더라도 암묵지를 글이나 영상으로 꺼내놓는 일은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온라인에는 지식이 많지만, 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 몸으로 익힌 경험과 지혜는 아직 충분히 정리되어 있지 않다.
회사 안의 선배들은 AI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비슷한 일이 예전에 왜 문제가 됐는지, 특정 고객이 어떤 표현에 민감한지, 숫자로는 가능해 보여도 현장에서는 왜 어려운지 알고 있다. 어느 순서로 누구에게 먼저 물어야 하는지도 안다. 다만 그것이 문서로 정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목재 현장에서는 “승산부짜리 소재로는 가공 후 마감 치수가 빠진다”는 짧은 말이 오간다.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낯선 말이지만, 그 안에는 소재의 가공성, 자재 손실률, 날물의 상태, 마감에서 확보해야 할 여유분까지 오랜 경험이 녹아 있다. 오래 일한 사람의 말은 그렇게 짧고 정확하다.

신입과 저연차 직원들이 선배에게 먼저 묻고, 그 내용을 블로그에 기록하면 다른 일이 생긴다. 선배의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중간관리자의 경험담이 신입 한 사람에게만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다른 동료에게도 전달된다. 회사 안의 암묵지가 디지털 기록으로 바뀐다.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할 때, 내가 경험한 사실과 선배의 조언과 외부 조사 내용을 구분할 때, 다른 부서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문장을 다듬을 때, AI는 매우 유용하다. AI는 선배의 암묵지를 대신할 수 없지만, 기록된 암묵지를 정리하고 확장하는 데는 큰 힘이 된다.
이렇게 AI의 질문에 답변을 이어가다 보니, 대화는 어느새 더 넓은 그림으로 번져 갔다. 직원들이 몸으로 경험하고, 선배에게 묻고, 글로 정리하고, 서로의 기록을 읽으며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흐름이 보였다. AI 활용 역량도 별도의 과목처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과 아이디어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기록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기록은 언젠가 개인의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 나도 이미 그 방식으로 글을 쌓아왔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시작한 글은 브런치와 오마이뉴스, 링크드인과 티스토리,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옮겨간다. 하나의 경험이 여러 형식의 기록으로 바뀌고, 같은 내용도 플랫폼에 따라 다른 언어를 얻는다. 기록은 시간이 쌓이면 책이 되고, 강의가 되고, 콘텐츠가 되고, 작은 사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다음에 더 길게 써야 할 주제다. 지금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더 작고 구체적이다. 신입이 오늘 무엇을 보았는지 쓰는 일, 선배에게 무엇을 물었는지 남기는 일, 그 글을 동료가 읽고 반응하는 일, 다음 멘토링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일. 바로 그런 반복이 사람을 키우는 조직의 바탕이 된다.
대화를 거의 끝낼 즈음, 나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이렇게 생긴 줄은 몰랐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AI의 질문을 따라 하나씩 배열되자, 내가 해오던 일이 한 장의 지도처럼 펼쳐졌다.
그제야 알았다. 드러난 것은 일의 순서만이 아니었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고, 일을 가르치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이 글 자체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보였다.
나는 평소에도 AI에게 곧장 초안을 맡기지 않는다. 이번 글도 먼저 준비해 둔 기사와 대화문을 건넸고, 그 기사들이 딛고 있는 논리적 근거를 따졌으며, 관련 연구와 조사 결과를 확인했다. 그런 다음 글의 맥락이 충분히 잡힐 때까지 AI와 대화를 이어갔다.
어느 순간 AI가 아직 붙잡지 못한 것이 있어 보였고, 그때서야 질문을 허락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하나씩 물어보라고 했다. 질문에 답하는 동안, 나는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해온 일들을 하나씩 꺼내놓고 있었다. 1:1 멘토링, 녹음, 블로그 기록, 선배의 암묵지, 현장 경험, AI 활용의 순서까지.
그것들은 어느 날 불쑥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오래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이었고, 나부터 하나씩 실행에 옮기며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다듬어온 실험이었다.
AI가 답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나는 AI에게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AI의 질문에 대답하며 오랜 실험 끝에 깨우친 것들을 차례로 펼쳐 보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해오던 일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되었다.
AI가 조직의 허리를 약하게 만든다는 말 앞에서, 나는 AI를 덜 쓰자는 결론에 이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AI는 써야 한다. 다만 순서가 중요하다. 현장 먼저, 선배 먼저, 기록 먼저, AI는 마지막이다.
AI가 사람의 경험을 건너뛰는 지름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 AI는 현장 경험과 선배의 암묵지와 개인의 기록을 정리하고 확장하는 도구로 쓰여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결재 시간에는 도장이 찍히지 않는다. 녹음 버튼이 켜지고, 질문이 오가고, 블로그 글이 올라오고, 누군가 좋아요를 누른다. 가벼워 보이는 그 흔적들 아래에서 신입들은 일하는 법과 기록하는 법을 함께 배우고 있다.
그런 작은 반복 속에서, 언젠가 조직의 허리가 될 사람들이 자라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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