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자기소개서를 쓰고, 기업이 AI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가 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몇 년 동안 공개된 공간에 남긴 글과 사진과 기록은 AI에게 어떤 사람의 흔적으로 읽힐까. 많은 사람이 MBTI 몇 글자에 열광하는 것도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알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얼마 전 내 브런치스토리 계정을 네 개의 인공지능에게 차례로 분석시켜 보았다. 남의 글을 도마 위에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공개된 글이라도 누군가의 직업적 서사와 평판을 함부로 해부하는 일에는 예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남의 글 대신 내 기록을 먼저 내밀었다. 제재소에서 일하며 쓴 목재 이야기, 고객 상담, 일터의 변화, 후배 교육, AI 시대의 직업 문제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보일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네 개의 인공지능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내 기록을 읽었다. 어떤 인공지능은 브런치스토리에 쌓인 100편이 넘는 글을 주제별로 추렸다. 처음에는 목재 상담과 제재소 일상에 가까웠던 글이 시간이 지나며 후배 교육, 기록 문화, AI 시대의 일터 변화, 채용과 사회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고 보았다. 흩어진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일터에서 세상을 읽어가는 과정으로 해석한 것이다.
또 다른 인공지능은 제재소 현장 경험과 나무라는 메타포, 기록을 강조하는 태도를 이 작가의 핵심 캐릭터로 보았다. 고객의 언어와 목재업계의 언어 사이를 잇는 통역자, 후배에게 기록의 필요성을 말하는 멘토, AI 시대에 사람의 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현장에서 바라보는 기록자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놀라웠던 것은 나를 좋게 평가했다는 점이 아니었다. 흩어진 글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주제와 시간의 흐름을 읽어냈다는 점이었다. 인공지능은 글쓴이의 속사정을 모두 알지 못한다. 때로는 그럴듯한 말로 빈칸을 채우기도 한다. 그러나 공개된 공간에 오래 남겨둔 기록이 있다면, 그 기록이 어떤 방향으로 쌓여왔는지는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이 실험이 단순한 호기심으로만 끝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채용 시장이 이미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AI 채용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채용 AI는 쏟아지는 이력서를 빠르게 걸러내는 보조 도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HR테크 시장의 흐름은 그보다 깊은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AI는 이제 지원자가 어떤 단어를 썼는지만 보려 하지 않는다. 채용 공고와 이력서의 의미가 얼마나 맞물리는지, 특정 직무에 필요한 역량과 후보자의 경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경험이 실제 직무 맥락 안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읽으려 한다. 자기소개서와 인터뷰, 공개된 프로필과 인재 데이터까지 함께 살피며 사람과 직무가 얼마나 잘 맞는지를 더 정밀하게 파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구직자 쪽의 변화도 빠르다. 생성형 AI는 자기소개서를 더 매끄럽게 만들고, 이력서의 문장을 더 그럴듯하게 다듬는다. 예전에는 서툴더라도 한 사람이 직접 고른 경험과 문장이 자기소개서 안에 남아 있었다. 어떤 경험을 고르고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지원자의 생각과 태도가 묻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짧은 시간 안에 반듯한 문장, 세련된 구성, 그럴듯한 직무 적합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평가하는 쪽도 AI를 쓰고, 평가받는 쪽도 AI를 쓴다. 그 순간 자기소개서는 이상한 처지에 놓인다. 분명 문장은 좋아졌지만 신뢰는 오히 약해졌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오랫동안 한 사람을 증명하는 문서였다. 그러나 AI가 그 문서를 너무 쉽게 만들어내는 순간, 증명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그런 문서가 넘쳐나면 평가하는 쪽은 다른 증거를 찾는다.
신입 및 저연차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 나는 ‘포트폴리오형 SNS’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여기서 말하는 SNS는 단순한 사생활 노출 공간이 아니다. 블로그, 브런치스토리, 링크드인, 깃허브, 뉴스레터처럼 한 사람의 일과 생각이 축적되는 공개 아카이브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의 이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시간이 남아 있느냐는 점이다.
AI는 오늘의 문장을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어제와 작년과 5년 전의 고민이 이어져온 흔적까지 한 번에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업로드 날짜는 작지만 강한 증거다. 처음에는 서툴렀던 문장이 조금씩 정돈되고, 업무 메모가 누군가에게 설명 가능한 지식으로 바뀌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객이 자주 묻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글, 현장에서 본 장면을 남긴 사진, 후배에게 설명하려고 정리한 메모, 어느 날 업무 중 떠오른 짧은 생각일 수 있다. 처음엔 업무를 덜기 위한 메모였고, 상담을 돕기 위한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한 사람이 오래 보아온 세계의 흔적이 된다.
시간은 진정성을 복리로 증명한다. 이 이야기는 채용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채용은 회사가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절차이고, 선거는 시민이 사람에게 권한을 맡기는 절차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구직자를 설명하는 문서라면, 공약집과 선거공보물은 정치인의 이력서이자 자기소개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오늘 어떤 말을 내놓느냐보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선거철 풍경은 여전히 낡은 방식으로 돌아간다.
소리가 커진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 주말 아침 아파트 단지로 유세차가 들어오고, 비가 오든 말든 확성기에서는 후보 이름이 반복된다. 후보의 정책을 설명하기보다 후보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데 가까운 방식이다.
이름도 커진다. 빌딩 외벽을 뒤덮는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거리 곳곳에서 선거운동원들이 피켓을 흔든다. 후보의 이름은 크게 보이지만, 후보가 지역을 연구한 시간과 내용이 함께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장면도 강해진다. 지지율이 불리한 후보들은 단식이나 삭발 같은 투쟁 행위로 절박함을 호소한다. 예전에는 그런 행동이 마지막 저항처럼 받아들여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유권자는 그 장면만으로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약속도 커진다. 미래산업 유치, 대규모 개발, 현금 지원, 반값, 무료 공약이 쏟아진다. 그러나 장면이 강해지고 약속이 커질수록 유권자의 질문은 더 분명해진다. 그 공약은 언제부터 준비된 것인가. 재원과 실행의 기록은 어디에 있는가.
정작 유권자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공약의 이력이다. 후보가 이 지역을 언제부터 들여다봤는지, 그 공약이 선거철에 급히 만든 문장인지 오래된 문제의식의 결과인지, 주민의 불편과 지역의 재정 여건을 실제로 살펴본 흔적이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선거 홍보물은 후보 번호와 이름만 크게 보여주면서, 그 너머의 공약과 내력은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현수막과 피켓에 QR코드 하나라도 붙어 있어 후보의 공식 기록과 공약 이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선거운동은 조금 덜 시끄럽고 조금 더 유용해질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의 SNS에서 업로드 날짜가 작은 증거라면, 정치인의 공개 기록에서 그것은 정책의 타임스탬프가 된다. 후보가 어떤 문제를 언제부터 들여다봤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자료와 경험을 거쳐 공약을 세웠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선거철에 갑자기 만든 홍보물이 아니라, 선거가 없을 때도 이어진 관심의 기록이다.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후보의 SNS에는 사적인 관심을 넘어 공적인 시선이 모인다. 유권자와 언론, 경쟁 후보와 정당 관계자가 그 계정을 들여다본다. 그때 중요한 것은 조회수가 아니다. 선거철에 커진 유권자의 시선 앞에 내놓을 만한 시간의 기록이 그곳에 있느냐이다.
권력자의 온라인 발언을 기록으로 보아야 한다는 감각은 이미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해외에서는 정치인의 SNS가 단순한 개인 게시물로만 취급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시기 SNS 발언은 국가의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소셜미디어 콘텐츠와 삭제된 게시물까지 보존·공개 대상으로 설명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SNS는 더 이상 사적인 수다가 아니라, 공적 발언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의 선거 제도가 미국의 대통령기록 제도와 같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후보자의 공식 SNS 기록을 선거관리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단계까지 나아가 있지 않다. 그러나 유권자의 감각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후보가 선거 기간에 무엇을 말했는지, 어떤 공약을 내놓았는지, 그 말이 선거 뒤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거 후보의 SNS도 단순한 홍보 게시판으로만 볼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공보와 벽보를 보존하듯, 후보가 공식 선거운동 계정으로 지정한 공개 계정과 공약 관련 게시물을 일정한 방식으로 등록·보존·공개하는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
모든 사적 게시물까지 국가가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유권자는 후보가 무엇을 공적으로 약속했고, 그 공약이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의 알 권리는 투표일 하루에만 필요한 권리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온라인 유세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정책의 타임스탬프다.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문장만 넘쳐난다면 유세차 소음이 온라인으로 옮겨갈 뿐이다. 중요한 것은 홍보의 속도가 아니라 기록의 깊이다.
기록은 선거 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당선 이후에도 공약이 어떻게 추진되고, 무엇이 막히고, 어디까지 마무리됐는지 남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맡겨달라”는 말도 지난 임기 동안 쌓인 과정의 기록 위에서 힘을 얻는다.
사람 사이의 신뢰도 결국 지난 시간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쌓인다. AI가 문장을 대신 쓰는 시대가 되면, 문장만으로 사람을 믿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의 지난 시간을 묻게 된다. 어떤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는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그 기록이 실제 경험과 이어져 있는지를 보게 된다. 구직자에게도 그렇고, 후보자에게도 그렇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더 시끄러워야 할 이유는 없다. 선거가 끝나면 유세차는 사라지고 현수막은 걷힌다. 선거공보물도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며칠 동안 크게 울리던 구호는 금세 잊힌다. 그러나 오래 남긴 기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소개서는 AI로 쓸 수 있고, 공약집은 선거철에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기록은 급조할 수 없다. 시간은 진정성을 복리로 증명한다. 그 복리는 하루아침에 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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