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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덕분에 늘어나는 공장의 생산성, AI 때문에 줄어드는 소비자의 구매력

mindofwoodman 2026. 6. 16. 13:56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농장주 존스 씨는 쫓겨났지만, 착취의 자리는 곧 돼지들이 차지했다.

 

1945년 출간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은 자신들을 부리고 착취하던 농장주 존스 씨를 몰아냈다. 그러나 농장은 오래 자유롭지 않았다. 존스 씨가 사라진 자리는 곧 돼지들이 차지했고, 다른 동물들은 다시 그들에게 지배당했다. 그래도 그때는 누가 자신들을 부리는지 볼 수 있었다.

 

이 시대의 공장주는 취한 몸으로 채찍을 휘두르지 않는다. 데이터를 보고, 공장을 짓고, 사람을 덜 쓰는 방식을 찾는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서울에 왔을 때, 아무도 공포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렬히 환영했고, 반도체의 장밋빛 미래에 환호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핵심 반도체와 플랫폼을 쥔 기업이다. 그래서 젠슨 황의 방문은 단순한 기업인의 방한이 아니었다. 한국 제조업이 AI 시대의 핵심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신호처럼 받아들여졌다.

 

젠슨 황이 돌아간 뒤 재계의 말이 바뀌었다. 삼성도, SK도, LG도 AI 도입을 업무 효율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꺼내 들었다. AI를 일부 업무에 쓰는 수준을 넘어 회사의 일하는 방식 전체를 바꾸는 AX라는 말이 대기업 기사마다 따라붙기 시작했다. AX, 곧 AI 전환은 단순히 챗GPT 같은 도구를 써보는 일이 아니다. 회사의 보고, 결재, 개발, 생산, 영업 방식을 AI 중심으로 다시 짜는 일이다.

 

업무를 AI로 전환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도됐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조금씩 대체하고 있다는 불편한 현실은 어느새 ‘AI의 전사적 도입은 기업 생존을 위한 숙명’이라는 뉴스 제목들 뒤로 가려져 있었다.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AI는 주식시장에서는 축제의 언어가 됐다. 반도체, AI 연산에 필요한 고성능 메모리, AI 공장, 로봇과 설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 같은 말들이 산업 뉴스를 채웠다. 피지컬 AI는 로봇, 자동차, 설비처럼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기계에 AI를 넣는 기술을 말한다. 그러나 AI를 주식시장의 호재로만 바라보면 이 변화의 절반만 보게 된다. 문제는 주가가 아니라, 그 기술이 공장과 사무실 안에서 어떤 일을 대신하게 되는 가다.

 

젠슨 황과 엔비디아에게 한국은 단순한 반도체 고객이 아니다. AI가 공장과 설비, 물류와 로봇 속으로 들어가려면 현장에서 나오는 데이터와 검증 가능한 공정이 필요하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와 조선, 로봇과 전자 같은 산업이 한 나라 안에 모여 있는 한국은 AI가 실제 공장과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줄 제조업의 실증 무대다.

 

엔비디아에게 한국이 AI 제조업의 가능성을 확인할 현장이라면, 한국 대기업들에게 그 흐름은 내부 전환과 새 사업 기회가 된다. 한국 기업의 일하는 방식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이미 한 번 크게 바뀐 적이 있다. 종이 서류와 구두 보고로 돌아가던 회사는 전자결재와 메일, 회계와 재고를 한 시스템에 묶는 그룹웨어와 ERP를 깔면서 결재, 재고, 인사, 회계, 발주를 시스템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룹웨어와 ERP는 회사 안의 결재와 메일, 회계와 재고, 인사와 발주를 한 전산망에서 처리하게 해주는 업무 시스템이다. 그때 회사는 더 빠르게 보고하고, 더 정확하게 계산하고, 더 많은 일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그 사내 전산망 위에 AI가 결합되는 일에 가깝다. 대기업 IT 계열사와 전산 조직은 오래전부터 업무용 AI를 개발해 왔다. 다만 이전의 업무용 AI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데이터를 분류하고 검색하고 자동화하는 데 가까웠다면, 이제는 여기에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글과 문서를 만들어내는 거대언어모델, 곧 LLM이 결합되기 시작했다. 기존 업무 시스템 위에 오픈AI 같은 글로벌 AI 기업의 모델과 플랫폼이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쌓여 있는 데이터의 양이다. 대기업은 오랫동안 사내 전산망과 ERP, 그룹웨어를 운영하며 결재 문서, 회의록, 계약서, 설계 자료, 고객 응대 기록, 코드와 업무 매뉴얼을 내부 시스템에 축적해 왔다. 이 자료들은 그동안 사람이 찾아 읽고, 부서별로 취합하고, 다시 보고서로 정리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AI가 이 내부 자료에 접근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인간 직원이 며칠씩 뒤져야 할 자료 검색과 취합, 분석과 초안 작성이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질 수 있다.

 

얼마 전 미국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에서 나온 사례는, AI가 기업 내부에 쌓인 업무 자산을 어떻게 다시 처리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앤스로픽은 최신 AI 모델 페이블 5 공개 자료에서, 스트라이프가 초기 테스트 중 이 모델로 루비로 작성된 5천만 줄 규모의 프로그램 코드 전체를 하루 만에 새 방식으로 옮겨 고쳤다고 소개했다. 사람이 직접 했다면 엔지니어 한 팀이 두 달 넘게 매달려야 할 작업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코딩 속도가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대한 조직 내부에 쌓인 복잡한 업무 자산을 AI가 한꺼번에 읽고, 바꾸고, 다시 실행 가능한 형태로 정리할 수 있다는 신호다.

 

이제 사내에 쌓인 자료는 저장된 서류에 머물지 않고, AI가 읽고 요약하고 업무 판단을 돕는 재료가 된다. 결재와 보고, 회의와 고객 응대 같은 일상 업무도 사람만 처리하는 절차가 아니라 AI가 함께 처리하는 흐름으로 바뀐다.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 같은 문서 보조 도구도 같은 방향을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의 한 연구에서는 코파일럿을 활용한 직원들이 이메일을 읽는 시간을 줄이고 문서를 더 빨리 작성한 것으로 보고됐다.

 

삼성SDS, LG CNS, SK AX 같은 대기업 IT 계열사들은 삼성, LG, SK 같은 대기업 그룹 안에서 전산망과 업무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해 온 회사들이다. 이들은 AI 모델과 사내 시스템을 연동해 업무 자동화를 추진하고, 모기업 안에서 먼저 검증한 경험을 다시 외부 고객사에 판매한다. 처음에는 보고서 초안과 회의록, 사내 자료 검색과 고객 응대 문안처럼 익숙한 업무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룹의 보고 방식, 생산 방식, 영업 방식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삼성SDS의 브리티 코파일럿은 메일과 결재를 요약하고, 답변 메일을 작성하고, 회의 자막과 회의록을 만든다. LG CNS는 시스템 분석과 설계, 코딩과 테스트, 품질진단에 이르는 개발 전 과정에 AI를 넣고 있다. 이것들은 화려한 미래 기술이라기보다, 저연차 직원들이 매일 붙잡고 있는 메일, 회의록, 자료 검색, 보고서 초안, 코드 검토와 테스트의 시간을 줄이는 기술이다.

 

반복 업무가 먼저 줄고, 이어서 그 일을 신입에게 가르치고 결과물을 검토하던 대리·과장급 실무자의 자리도 흔들린다. 이미 IT 업계에서는 AI를 잘 다루는 소수의 고숙련자가 더 많은 일을 처리하고, 평범한 개발자의 자리는 좁아질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남는 사람은 AI에게 일을 시키고, 결과를 검수하고, 책임질 수 있는 극소수의 고숙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흐름이 사무직과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재계 총수들의 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재용 회장은 일하는 방식과 조직 DNA를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며, 연구개발부터 생산과 마케팅, 지원 업무까지 회사의 전 과정에 AI를 접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은 이에 따라 전 관계사 사장단 50여 명을 대상으로 첫 AI 집중교육인 ‘AX 부트캠프’를 실시하고, 관계사별 AI 전담 조직도 신설하기로 했다. 동시에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국내외 모든 생산 공장을 AI가 설비 상태를 읽고 공정을 조정하는 자율공장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경영진은 AI를 배우고, 공장은 AI가 현장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SK의 언어는 더 급박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금 전속력으로 전방위적인 AX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맞이한 절호의 기회는 다시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회의장 밖으로도 내려왔다. SK텔레콤에서는 평일 아침 구내식당에 노트북을 펼친 직원들이 모여 생성형 AI 실습을 한다. 식당이 교실이 되고, 개발자가 아닌 직원들까지 업무 시작 전 AI 활용법을 익히는 풍경은 AX가 더 이상 연구소나 전산 부서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발언과 사례들을 나란히 놓으면 기업의 AI 도입이 무엇을 뜻하는지 더 분명해진다. 몇몇 직원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써보는 일이 아니다. 회사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AI 위에서 다시 짜겠다는 선언이다. AI는 도구의 이름으로 들어오지만, 어느 순간 회사가 일을 판단하고 배분하고 처리하는 기준이 된다.

 

기업이 AI 도입을 생존 전략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까지는 시간과 명분이 필요했다. AI는 투자자에게는 희망이지만, 직장인에게는 불안이다. 투자자는 AI를 미래 이익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직장인은 AI를 자기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느낀다. 같은 기술을 두고 한쪽은 환호하고, 다른 한쪽은 자기 업무가 사라질 가능성을 떠올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는 노동을 바라보는 대중 정서의 변화를 드러냈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의 정당한 배분을 요구했지만, 논란은 곧 수억 원대 성과급 규모와 사업부 간 격차 문제로 번졌다. 노동의 몫보다 고액 성과급 규모가 먼저 논란이 된 장면은, 자동화와 인력 재편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높아지는 분위기와도 맞물려 있다.

 

여기에 반도체라는 이름이 붙으면 기업의 카드는 더 강해진다. 반도체 공장은 단순한 민간 투자 시설이 아니다. 국가 안보 산업이고, 지역 경제의 희망이며, 미래 제조업의 상징이다. 공장이 들어오면 일자리와 세금, 지역 개발이 따라온다.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는 기업을 강하게 압박하기 어렵다. 최근 최태원 회장은 차기 반도체 공장입지를 두고 한국뿐 아니라 해외 가능성도 열어둔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런 카드 앞에서 노동정책과 규제는 쉽게 강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동물농장』 속 존스 씨는 술에 취했고 무능했다. 동물들은 그를 미워할 수 있었다. 지금의 공장주는 다르다. 그는 채찍을 들고 들판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전력과 용수, 부지와 인력을 계산하고, 어느 공정을 자동화할지 따진다. 문제는 그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유능해서다.

 

그 계산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지어질 차세대 공장은 이전 공장과 다를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다. 현대위아는 2028년까지 입고부터 출하까지 사람의 상주 없이 돌아가는 무인 자동화 공장, 이른바 다크팩토리 기술 개발을 말하고 있다. 다크팩토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 불을 밝힐 필요도 없는 공장이라는 뜻이다. LG전자의 AI 자율주행 로봇은 제철소의 고위험 설비를 사람 개입 없이 점검했고, SK이노베이션의 스마트플랜트는 설비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모아 기계가 언제 고장 날지, 생산 과정에서 무엇을 조정해야 할지 미리 예측하는 방식으로 AI를 붙이고 있다.

 

기업은 이것을 안전과 효율의 언어로 설명한다. 사람이 들어가기 위험한 곳에 로봇을 넣고, 설비 고장을 미리 예측하고, 공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돌리겠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말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더 많은 데이터가 흐르고, 더 많은 공정이 자동화되고, 더 적은 사람이 더 많은 생산을 관리하는 공장이다.

 

회사는 굳이 사람을 줄인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위험 작업을 줄인다고 말하면 된다. 설비 고장을 미리 막겠다고 말하면 된다. 생산 효율을 높이고, 품질을 안정시키고,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고 말하면 된다. 모두 그럴듯한 말이고, 상당 부분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들이 쌓이는 끝에는 예전처럼 많은 사람을 뽑지 않아도 돌아가는 공장이 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질문이 아니다. 기계가 생산성을 끌어올릴 때마다 자본주의는 같은 질문 앞에 섰다.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된 사회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안에서 반복되는 이 모순을 오래전에 짚었다.

 

마르크스는 단순히 공산주의를 주창한 사상가로만 기억되지만, 그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집요하게 들여다본 사람이었다. 그는 자본주의 바깥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을 봤다.

 

기계는 더 많은 것을 만들었지만, 그 옆의 사람은 더 불안정해졌다.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필요한 사람은 줄었다.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은 예전처럼 소비할 수 없다. 기업은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됐지만, 그것을 사줄 사람들의 지갑은 얇아질 수 있다. 많이 만들 수 있는 힘이 커질수록, 그것을 사줄 사회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역설이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스스로 가진 이런 모순 때문에 흔들릴 수 있다고 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AI는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불러낸다. 기업에게 AI는 사람 쓰는 돈을 줄이고 생산량을 늘리는 기술이다. 하지만 그 비용 절감이 사람을 덜 쓰는 방식으로 실현된다면, 기업의 비용 항목에서 사라진 인건비는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월급 감소, 소비 감소, 매출 감소로 모습을 바꾼다. 회사가 줄인 비용은 다른 사람의 돈벌이 감소로 옮겨간다.

 

기업 안에서는 비용 절감으로 보이는 일이, 기업 밖으로 나오면 채용 축소와 업무 재편이 된다. 채용의 문이 좁아지면 청년의 소득 기반이 약해지고, 소득이 약해지면 소비도 줄어든다. AI 전환의 비용은 이런 경로를 타고 회사 밖으로 번질 수 있다.

 

AI는 생산을 늘리는 기술인 동시에, 수요를 흔드는 기술이 될 수 있다.

 

칼 마르크스는 159년 전 출간한 『자본론』 제1권에서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을 짚었다.

 

그렇다고 이 경로가 이미 모두 완성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AI가 임금을 직접 끌어내리고 소비를 줄였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청년 고용의 입구가 좁아지고, 자영업 부채가 늘고, 부동산 개발 사업에 돈을 빌려주는 프로젝트파이낸싱, PF와 은행보다 위험한 대출을 더 많이 떠안는 저축은행·캐피털 같은 2 금융권의 약한 고리가 드러나는 흐름은 이미 통계와 기사 위에 올라와 있다. 남은 문제는 이 흐름들이 앞으로 어디서 만날 것인가다.

 

정부도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노동을 보호하겠다고 말해야 하지만, 기업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 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협상 카드로 꺼내는 순간 계산은 복잡해진다. 규제가 강하면 투자가 어렵다, 국내 공장 증설을 재검토할 수 있다, 자동화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은 정치권이 쉽게 무시하기 어렵다.

 

그 사이 고용 통계는 표면과 속이 갈라진다. 정규직에 가깝고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로 분류되는 상용근로자가 2026년 5월, 26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 외환위기 여파가 남아 있던 1999년 12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감소의 위치다. 20·30대 상용근로자는 19만 명 넘게 줄었다. 제조업 부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다. AI가 채용 위축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그러나 안정적인 일자리의 입구가 청년층과 전문직 주변에서 먼저 좁아지고 있다는 신호는 이미 숫자로 나와있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국가는 다른 꿈을 제시한다. 주식시장으로 가라고 한다. 코스피를 보라고 한다. 한때 근면한 일개미로 불리던 사람들은 국내 주식에 몰려간 동학개미와 해외 주식에 몰려간 서학개미라는 이름으로 투자자로 다시 불린다. 땀 흘려 모은 근로소득의 서사는 어느새 낡은 말처럼 밀려나고, 가격이 오르는 자산을 얼마나 빨리 붙잡았는지가 새로운 성실함처럼 말해진다. 일해서 버는 돈이 불안해질수록, 사람들은 가격이 오르는 자산을 쳐다보게 된다.

 

동시에 정부는 창업을 말한다.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질수록 정부는 청년에게 창업을 또 다른 출구로 제시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에는 6만 명 넘는 신청자가 몰렸고, 그중 39세 이하 청년이 68%를 차지했다. 노동의 문이 좁아질수록 사람들은 투자자나 창업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린다.

 

그러나 장사 역시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2024년 폐업 신고 사업자는 100만 8282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 100만 건을 넘어섰다. 2026년 1분기 도소매·숙박·음식점업 대출은 356조 원에 육박했다. 창업이 출구처럼 말해지는 동안, 이미 문을 닫는 가게와 빚으로 버티는 가게도 늘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그 충격은 가게 문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임차인이 월세를 못 내면 건물주의 임대수익이 줄어든다. 공실이 늘면 상가의 가격이 흔들린다. 상가 가격이 흔들리면 대출의 담보 가치도 흔들린다. 담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도 안전하지 않다. 한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불리던 사람도 월세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빚진 건물주가 된다. 그렇게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는 건물주의 임대수익 감소를 거쳐 금융권의 부실로 옮겨갈 수 있다.

 

부동산 PF 부실도 이 흐름과 떨어져 있지 않다. 건설업은 공사 현장 노동자뿐 아니라 자재, 운송, 설비, 인테리어, 금융을 함께 움직이는 산업이다. 고용을 흡수하는 힘이 큰 산업이 흔들리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받아줄 다른 통로도 함께 좁아진다.

 

PF 부실이 금융권에 쌓이면 문제는 다시 소비로 돌아온다. 빌려준 돈을 제때 돌려받기 어려운 부실채권이 늘어난 금융회사는 대출 기준을 높이고, 위험을 금리에 반영한다. 근로소득은 흔들리는데 대출 문턱까지 높아지면 개인은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다. 소비가 줄면 자영업자의 매출이 줄고, 상가 임대수익이 흔들리고, 담보 가치도 약해진다. 그렇게 고용의 문제는 신용의 문제를 거쳐 다시 소비의 문제로 돌아온다.

 

소비가 줄면 기업은 다시 매출 둔화를 말한다. 첫 번째 인력 감축이 AI 전환의 이름으로 왔다면, 두 번째 인력 감축은 내수 부진의 이름으로 올 수 있다.

 

지금까지 짚은 경로는 추상적인 위기가 아니다. 기업 안에서는 AI 도입으로 생산성이 올라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밖에서는 월급이 줄고, 소비가 줄고, 가게 매출이 줄고, 임대료와 대출이 흔들리는 현실이 남는다. AI가 기업 안에서 지운 비용은 이런 식으로 사회 곳곳에서 생계 불안, 소비 감소, 빚으로 다시 나타난다.

 

기업은 이미 AI를 업무망에 넣고 있고, 공장은 더 적은 사람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는 그 논의에 가장 늦게 초대될 가능성이 크다. AI가 사람을 돕느냐, 대체하느냐는 질문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큰 질문은 노동의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그리고 더 적은 사람이 만든 물건을 누가 사줄 것인가다.

 

2017년 서울대 공대 유기윤 교수 연구팀은 미래 도시 시뮬레이션 연구에서 AI 권력이 사회를 극단적으로 갈라놓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시 보도는 이를 0.003% 대 99.997%의 초양극화 사회라는 표현으로 소개했다. 플랫폼을 가진 극소수와 그 플랫폼에 접속해 살아가는 다수. 연구팀은 인공지능 로봇 계급이 2050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2090년의 미래 도시는 인간의 노동이 밀려난 초양극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핵심은 숫자 자체보다 방향이다. AI와 플랫폼을 가진 극소수에게 부와 권한이 집중되고, 다수는 그 시스템에 접속해 일하고 소비하는 위치로 밀려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때만 해도 그 예측은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2년 11월 ChatGPT가 등장한 뒤, 그 경고의 시간표는 크게 앞당겨졌다.

 

불과 몇 년 만에 생성형 AI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고, 기업은 AX를 말하며, 노동자는 자기 일의 일부가 언제든 자동화될 수 있다는 현실 앞에 서게 됐다. 그 변화가 어디까지 갈지, 그리고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할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묻지 않았다.

 

존스 씨는 사라졌다. 돼지도, 채찍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공장은 더 조용해지고,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더 적은 사람으로도 충분해질 것이다.

 

공장에서 만든 물건을 누가 살 것인가, 공장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