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미얀마 정부는 원목 수출을 금지했다. 이어 2016~2017 회계연도에는 전국의 목재 채벌을 한 해 동안 중단했다. 티크림이 집중된 바고요마 지역에는 별도로 10년의 벌목 금지를 뒀다. 벌목을 멈춘다는 결정은 숲에서 나무를 베는 풍경만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다.
정부 경매장에 나오는 원목 물량이 크게 줄었다. 벌목 작업이 이뤄지는 산지에서 무거운 원목을 숲 밖으로 끌어내던 작업 코끼리와, 그 곁에서 코끼리를 돌보고 이끌던 마후트도 함께 일을 쉬게 됐다. 그러나 벌목을 멈췄다고 코끼리의 먹이와 돌봄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얀마 목재기업의 작업 코끼리는 무작정 숲에 들여보내 일을 시키는 동물이 아니었다. 1951년 제정된 코끼리규제법(Elephant Regulation Act)은 국영·민간 사육 코끼리를 생후 세 달부터 산림 당국에 등록하도록 했다. 국영 목재기업이 관리한 코끼리에게는 ‘Form J’라는 개체 기록부가 따라다녔다. 이름과 성별, 포획 또는 출생 이력, 길들이기 시점, 수의 진료, 번식, 작업량이 기록됐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코끼리는 17세를 넘긴 뒤 본격적으로 원목 운반 작업을 시작해 55세에 은퇴했다. 하루 5~8시간, 주 5일, 1년에 7개월 일했다. 작업이 끝난 밤에는 12~16시간 숲에서 먹이를 찾으며 지냈다. 젖먹이 새끼가 있는 암컷은 새끼가 한 살이 될 때까지 작업에서 빠졌다.
이런 작업시간과 방목 규정만으로 코끼리가 충분히 보호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얀마의 작업 코끼리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야생에서 포획됐다. 포획된 코끼리와 사육 상태에서 태어난 코끼리는 네다섯 살 무렵 길들이기와 훈련을 거쳤다. 그 과정에 폭력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코끼리에게는 이 일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얀마의 작업 코끼리가 겪어온 삶을 학대라는 한 단어로만 설명하기도 어렵다. 낮에는 통나무를 끌었지만, 작업이 끝난 뒤에는 숲에서 먹이를 찾는 시간도 따로 있었다. 은퇴한 코끼리에게도 돌봄을 위해 마후트가 붙었다. 코끼리는 통나무를 끌고, 마후트는 곁에서 돌보고 이끌었으며, 국영 목재기업과 산림 당국은 그 벌채와 운반을 관리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벌목을 금지했다고 해서, 일하던 코끼리를 숲에 풀어준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었다. 미얀마에서는 숲과 농경지의 경계에서 야생 코끼리와 주민의 충돌이 이어져 왔다. 코끼리가 논밭을 헤치고 마을 가까이 내려와 농작물과 주거지에 피해를 주는 곳도 있다. 이미 코끼리가 살아갈 숲은 농경지와 마을 사이로 잘게 나뉜 곳이 많았다.
코끼리가 벌목 작업장에서 끌어낸 원목 가운데 국제 시장에서 가장 이름난 수종이 티크였다. 티크(Teak, Tectona grandis)는 미얀마에서 쥰(Kyun)이라고 부른다. 나무 속의 천연 오일과 추출성분 덕분에 티크는 비와 습기, 해충에 비교적 잘 버틴다. 말린 뒤에도 수축과 팽창이 크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티크는 오래전부터 선박의 갑판과 외부 노출부, 문과 창호, 바닥, 고급 가구에 쓰였다.
하지만 티크라는 수종명만으로 원목의 값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어느 산지에서 자랐는지, 몇 년을 자랐는지, 직경이 얼마나 되는지, 나무 중심부의 짙고 단단한 심재가 얼마나 차 있는지, 줄기가 곧고 긴지도 가격을 매기는 중요 요소다. 제재소가 넓고 긴 판재를 얼마나 켜낼 수 있는지에 따라 원목의 가격도 차이가 난다.
미얀마 티크가 오랫동안 국제 목재 시장에서 각광받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미얀마는 오래 자란 천연림에서 큰 직경의 티크 원목을 얻을 수 있었던 대표 산지였다. 큰 원목에서는 넓은 판재와 긴 부재가 나왔고, 심재 비율도 높았다. 티크가 비와 습기, 해충에 견디고 건조 뒤에도 치수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은 수종 고유의 성질이다. 제재소와 구매자가 값을 더 쳐준 것은, 그런 물성을 넓은 판재와 긴 부재로 쓸 수 있는 원목이었다.
그래서 ‘미얀마 티크’는 단순한 원산지 표기가 아니었다. 그 이름에는 오래 자란 천연림, 큰 원목, 높은 심재 비율, 오랜 사용 경험을 통해 쌓인 품질 평판이 함께 들어 있었다.

티크는 인도에서 미얀마, 태국과 라오스에 이르는 계절림에 자라던 나무다. 미얀마 티크가 높은 값을 받자 다른 열대 지역에서도 티크를 심고 길렀다. 어느 산지의 종자가 자기 땅에서 더 곧고 굵은 나무로 자랄지 시험했다.
하지만 미얀마에서 가져온 종자나 묘목을 다른 땅에 심는다고 모두 미얀마 천연림의 큰 티크와 같은 목재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식재된 지역의 토양과 강우량, 건기의 길이, 생장 속도, 식재 밀도, 관리 방식, 나무를 베는 시기가 달라지면 티크 목재의 결, 비중, 심재 비율과 재색, 건조 뒤의 안정성도 달라질 수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의 티크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자바에는 티크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고, 오늘날 티크림에는 오랜 조림의 역사도 남아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자바 북해 안의 조선소에 쓸 목재를 확보하려고 티크림을 관리했다. 회사가 해체된 뒤 19세기 네덜란드 식민정부는 기존 티크림을 국가 산림으로 편입하고, 벌채 뒤 티크를 다시 심는 조림지를 만들고 관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티크를 부르는 이름은 자티(Jati)다.
미얀마의 천연림에서 해외 시장으로 팔려 나간 나무는 티크만이 아니었다. 핀카도와 파덕, 타말란도 각기 다른 물성과 쓰임, 유통명을 가진 고급 활엽수였다. 핀카도(Pyinkado, Xylia xylocarpa)는 무겁고 단단한 활엽수다. 영어권에서는 버마 아이언우드라고도 부른다. 기둥과 바닥, 마모를 견뎌야 하는 부재에 썼다. 파덕(Padauk, Pterocarpus macrocarpus)은 황적색에서 붉은 갈색으로 깊어지는 색과 단단한 물성 때문에 가구와 조각, 고급 내장재로 팔렸다.
한국의 중장년 독자에게 ‘버마’라는 이름은 1983년 10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를 보도하던 뉴스에서 반복해 들은 나라 이름일 수 있다. 1989년 군사정권은 나라의 공식 영문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 그러나 국제 목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수종 이름에는 옛 영어 국명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타말란(Tamalan, Dalbergia oliveri)은 달베르기아류 목재다. 국제 시장에서는 버미즈 로즈우드라는 이름으로 거래됐다. 짙은 심재와 무게감, 세밀한 가공성은 중국 고급 가구 시장이 선호하는 조건이었다. 짙은 심재에 붉은빛과 갈색이 섞여 나오는 재색도 높은 값을 부르는 이유였다.
중국의 고급 목가구 시장에는 홍목(紅木, Hongmu)이라는 분류가 있다. 홍목은 하나의 수종명이 아니다. 전통 가구 시장이 붉은빛과 갈적색, 검붉은 심재를 지닌 여러 단단한 열대 활엽수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예로부터 붉은색은 중국에서 길상과 경사, 번영을 상징해 왔다. 붉은색이 짙게 드러나는 목재로 만든 묵직한 장과 탁자, 의자는 생활용품이면서 부와 집안의 위신을 드러내는 표상이기도 했다.

미얀마에서 티크는 수출용 원목이 되기 오래전부터 다리와 왕궁, 수도원에 쓰였다. 만달레이 남쪽 아마라푸라의 타웅타만 호수에는 우 베인 다리가 놓여 있다. 19세기 중반 인와 왕궁을 해체하며 나온 티크를 재활용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다리다.
슈웨난도 수도원은 민돈 왕의 거처였던 만달레이 왕궁의 건물을 떼어내 옮긴 티크 목조건축이다. 인와의 바가야 수도원은 굵은 티크 기둥들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티크는 다리에서는 사람의 발걸음을 이었고, 수도원에서는 기둥과 처마가 됐으며, 왕궁에서는 왕의 거처를 짓는 재료였다.
티크가 미얀마 안에서 다리와 수도원, 왕궁을 이루던 시간은 19세기 영국의 세 차례 전쟁을 거치며 제국의 철도와 선박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1826년 제1차 영국-버마 전쟁 뒤 체결된 얀다보 조약으로 영국은 버마의 테나세림을 얻었다. 1852년 제2차 전쟁 뒤에는 페구, 오늘날의 바고 지역을 병합했다. 1885년 제3차 전쟁으로 상미얀마까지 손에 넣으면서 영국은 미얀마 내륙 더 깊숙이 자리한 티크림도 자신들이 짠 산림 행정과 벌채 계획에 편입했다.
영국은 숲을 조사하고 구획을 나누며 벌채 순서를 정했다. 식민지 시기 만들어진 미얀마 산림선택제도는 벌채 대상 산림을 30년 주기의 벌채 계열로 설정하고, 이를 30개 구획으로 나눠 해마다 한 구획에서 일정 직경 이상의 성숙목을 골라 베는 방식이었다. 한 구획이 다시 벌채 차례를 맞기까지는 30년이 걸렸다.
산림 당국은 입목, 곧 숲에 서 있는 나무를 조사하고 경영계획을 세운 뒤 연간허용벌채량을 정했다. 특정 해에 베어낼 수 있는 양을 미리 제한하는 상한선이었다. 이 제도는 숲을 다시 키울 시간을 두는 방식이었지만, 동시에 영국이 필요한 티크를 오래 끊기지 않고 가져가기 위한 방식이기도 했다.
미얀마의 코끼리가 끌어낸 통나무는 인도의 철로 밑에 침목으로 깔려 군대와 쌀, 면화와 광물을 실은 열차를 받쳤다. 관청과 주택에서는 문과 창호, 천장 패널과 계단, 가구가 됐고, 일부는 선박의 갑판과 외부 노출부에 쓰여 제국의 바다를 건넜다. 미얀마 숲의 나무는 철로와 항로를 타고 영국이 지배하던 지역 곳곳으로 퍼져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개인 기업이 아닌 국영기관이 국가 소유 산림에서 원목을 베고 팔았다. 기관 이름은 바뀌었지만, 목재의 벌채와 판매를 국가가 관리하는 방식은 이어졌다.
1948년 독립한 버마 정부는 스테이트 팀버 보드를 세웠다. 이 기관은 국가 소유 산림에서 나오는 원목의 벌채와 판매를 맡았다. 1962년 3월 2일 육군참모총장 네 윈은 우 누의 민선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혁명평의회를 세웠다. 이듬해 기업국유화법이 시행되면서 목재를 포함한 주요 산업은 국가 통제 아래 들어갔다.
1970년대 초 스테이트 팀버 보드는 팀버 코퍼레이션으로 개편됐다. 1988년 8월 장기 군정과 경제난에 항의하는 민주화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군은 이를 유혈 진압했다. 같은 해 9월 군사정권이 권력을 장악했다. 이듬해 팀버 코퍼레이션은 미얀마 목재기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군사정권은 태국과 맞닿은 국경 산림의 벌채권을 태국 업체들에 내줬다. 계약은 1993년 중단됐다. 그 사이 국경지대 숲에는 벌목도로가 들어섰고, 태국으로 넘어간 원목은 현지 제재소와 가공업체를 거쳐 다른 나라 시장으로 팔려 나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자료에 따르면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미얀마는 연평균 약 31만㎥의 티크 원목과 약 4만 2700㎥의 제재·가공품을 수출했다. 수출의 중심은 제재·가공품보다 원목이었다.
군부가 외화를 벌기 위해 내다 판 것은 숲 전체가 아니라, 이미 국제 시장에서 이름과 가격이 붙은 수종들의 원목이었다. 티크와 핀카도, 파덕과 타말란 같은 고가 활엽수는 새 제재소를 세우지 않아도 원목 상태로 기존 벌목도로와 국경길을 거쳐 수출할 수 있었다.
미얀마 산림선택제도는 한 구획이 다시 벌채 차례를 맞기까지 30년을 두는 방식이었다. 연간허용벌채량도 한 구획이 30년 뒤 다시 벌채 차례를 맞을 때까지 숲이 남아 있을 만큼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30년 뒤 다시 자랄 숲보다, 당장 원목을 수출해 외화를 급히 마련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그 제도는 한 구획이 다시 벌채 차례를 맞기까지 30년을 두는 방식이었다. 연간허용벌채량도 한 구획이 30년 뒤 다시 벌채 차례를 맞을 때까지 숲이 남아 있을 만큼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30년 뒤 다시 자랄 숲보다, 당장 원목을 수출해 외화를 급히 마련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미얀마 원목이 국경 밖으로 나가는 길은 서쪽과 남쪽에만 있지 않았다. 북쪽에는 중국의 목재 가공업과 가구 시장이 있었다. 중국은 원목과 제재목, 펄프와 목재칩을 들여와 가구와 합판, 바닥재와 내장재로 가공했다. 미얀마 원목도 국경을 넘어 중국의 제재소와 가구 공장으로 들어갔다.
중국이 미얀마 목재를 사들이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가구·합판·바닥재 공장은 꾸준히 대량의 원료를 사들였다. 홍목 가구 시장은 붉은 심재와 무게감, 희소성을 가진 활엽수에 높은 값을 매겼다. 전자는 물량을 끌어당겼고, 후자는 가격을 끌어올렸다.
티크는 중국의 홍목 가구 시장이 찾던 붉은 재색과는 다른 이유로 높은 값을 받았다. 천연 오일과 내후성, 치수 안정성 때문에 해양·외부용 부재와 고급 건축·가구용 목재로 쓰였다. 반면 타말란과 파덕은 붉은빛과 밀도, 희소성 때문에 중국의 고급 가구 시장에서 더 높은 값을 불렀다.

미얀마 숲이 줄어든 책임을 중국에만 돌릴 수는 없다. 군부의 외화 조달, 국경 지역의 무장 갈등, 밀수와 부패가 얽혀 있었다. 중국의 가구·합판 공장들은 꾸준히 원목을 사들였고, 홍목 시장은 희귀 활엽수의 값을 끌어올렸다.\
2014년 원목 수출 금지와 2016~2017 회계연도의 전국 채벌 중단은 원목을 베고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양을 줄이기 위해 내놓은 조치였다. 정부는 전국 채벌 중단과 별도로 바고요마 지역에 더 긴 벌목 금지 기간을 뒀다. 티크림이 집중된 바고요마는 더는 예전처럼 계속 나무를 벨 수 없는 곳이 됐다. 그러나 벌목을 멈춘 뒤에도 산지에는 코끼리와 마후트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벌목 일에 의존하던 민간이 소유한 작업 코끼리와 그 마후트에게는 일감이 줄었다. 코끼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먹어야 했고, 치료와 관리가 필요했다. 코끼리 한 마리는 한 마후트와 그 가족에게 재산이면서 생계수단이었다.
그 여파는 코끼리와 마후트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 때 목재를 썼고,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나무를 땔감으로 썼다.
미얀마에도 조림지는 있었다. 그러나 조림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훼손된 숲과 원목 공급의 공백이 곧바로 메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무가 자라 원목이 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고, 그 뒤에도 말리고 켜고 가공할 설비와 인력이 필요했다.
나무는 자라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줄기와 뿌리, 토양에 저장한다. 숲을 베지 않고 다시 키우는 일이 한 나라의 산림 정책을 넘어 온실가스 감축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그러나 숲을 기후위기 대응의 탄소흡수원으로 남겨두는 일에는 비용이 든다. 코끼리와 마후트를 돌보고, 주민이 쓸 대체 연료와 목재를 마련하고, 훼손된 땅에 묘목을 심어 불과 병해충을 막고, 원목을 말리고 켜고 가공할 설비와 업체를 갖추는 비용이다.
한때 미얀마의 숲에서 베어진 티크는 서구 열강의 철도와 선박을 떠받쳤고, 뒤에는 중국의 제재소와 가구 공장을 거쳐 세계 시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숲을 다시 기르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그 과정의 위험을 먼저 떠안는 쪽은 결국 미얀마였다.
그 숲이 다시 자라기를 기다려야 하는 수십 년 동안, 과거 제국의 중심지였던 유럽은 지금 극한 폭염에 시달리며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2026년 6월 프랑스 남서부 피소스의 기온은 44.3도까지 올랐다. 영국에서는 수백 곳의 학교가 문을 닫거나 수업 시간을 줄였고, 고온 탓에 철도 운행이 취소되거나 감속 운행에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로마와 밀라노 등 16개 도시에 최고 단계 폭염 경보를 내렸으며, 밀라노와 토리노에서는 냉방 수요가 급증하며 정전이 이어졌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는 44도까지 올랐고, 평소 비교적 서늘한 북부 칸타브리아와 바스크 지역도 40도를 넘겼다.
바고요마의 티크 숲을 다시 키우는 시간과 비용을, 과연 미얀마만 감당하게 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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