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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쇼크 시대에 각자도생은 가능한가

mindofwoodman 2026. 5. 12. 12:26

유가 상승은 주유소 기름값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주유소 앞에 차량 대기줄이 길어진다. 운전자는 가격판을 보고, 주유기 숫자를 보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4월 소비자물가는 2.6% 올랐고,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21.9% 뛰었다. 한국은행은 고유가가 이어질 경우 5월 물가 오름폭이 4월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봤다. 숫자로는 그렇다. 그러나 주유소 앞에서 사람이 떠올리는 것은 통계가 아니다. 이번 달 점심값을 줄일지, 배달을 끊을지, 주말 약속을 미룰지다.

기름은 넣어야 한다. 출근길을 줄일 수 없다면 줄일 수 있는 것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그 계산은 주유소에서 시작해 식당 메뉴판으로 넘어가고, 배달앱으로 넘어가고, 세탁소 영수증과 자동차 정비비로 넘어간다. 한 번씩은 사소하다. 그러나 반복되면 생활의 폭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가격판만 보인다. 며칠 뒤에는 메뉴판이 보이고, 몇 주 뒤에는 근무표가 보인다. 알바 시간이 줄고, 채용 공고가 줄고, 회사 복도에는 인력 조정 이야기가 돈다. 기름값은 그렇게 생활비를 지나 일자리의 문제로 번진다. 불황은 해고 통보로만 시작하지 않는다. 퇴사한 자리를 새로 뽑지 않고, 6개월 계약직의 계약을 끝낸 뒤 다시 채용하지 않고, 알바 시간표를 한두 시간씩 줄이는 방식으로 먼저 온다.

취업준비생은 채용 공고창에 새로고침을 반복하고, 희망퇴직자는 다시 일할 곳을 찾는다. 처지는 다르지만, 묻는 말은 비슷해진다. 그 걱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주유소 가격판 앞에 닿고, 더 멀리는 호르무즈 해협에 닿는다. 오일 쇼크의 공포는 유가 그래프의 꼭대기에만 있지 않다. 그 가격을 감당할 일자리와 일터가 흔들릴 때 시작된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1973년 한국은 중화학공업을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철강, 조선, 자동차, 정유, 석유화학. 그 길을 막 닦기 시작한 그해 10월, 중동발 석유파동이 왔다. 기름값은 단순한 연료비가 아니었다. 공업화의 원가였고, 수출국가로 올라서려는 나라의 통행료였다. 그때의 충격은 컸지만, 한국 경제는 아직 산업을 키워가던 단계에 있었다. 차입과 투자는 공장과 설비, 수출 기반을 늘리는 데 몰렸고, 앞으로 더 커질 산업이 앞에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은 이미 그 산업을 키웠다. 그러나 그 산업이 지금도 같은 성장 엔진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석유화학은 세계적으로 생산은 늘었는데 사려는 사람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사업을 줄이거나 설비를 조정하고 있다.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됐다. 산업 위기가 지역경제와 고용으로 번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포항 철강산업도 공장 폐쇄와 휴업, 지역 경기 침체 속에서 몸집을 줄여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 1973년의 유가 충격이 키워야 할 산업의 원가를 밀어 올린 것이었다면, 지금의 유가 충격은 이미 구조조정 중인 주력 산업이 추가로 떠안아야 할 비용이다.

더구나 지금은 가계도, 기업도, 정부도 이미 빚을 안고 있다. 빚이 많다는 것은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가 고정비로 굳어 있다는 뜻이다. 유가가 오르면 생활비와 원가가 오르고, 그 위에 이자 부담까지 겹친다.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와 채용을 미루며, 정부는 지원을 늘리고 싶어도 재정 부담을 의식해야 한다.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맞는 충격은 같은 크기여도 더 깊이 파고든다.

번지는 경로는 그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충격을 흡수할 완충지대는 그때보다 얇다. 사람들에게 그 충격은 정유공장이나 석유화학단지의 위기보다 먼저 주유소 가격판 앞에서 시작된다.

주유소에서 시작된 물가 도미노

점심시간, 계산은 식당 앞에서도 이어진다. 단골 식당 메뉴판에 천 원이 더 붙어 있다. 손님은 주인에게 따지지 않는다. 가격이 왜 올랐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다음부터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기 시작한다. 그런 선택이 쌓이면 누군가의 매출은 사라진다.

석유류 가격 상승은 주유비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냉장차 기름값은 식재료 납품가에 붙고, 택배 트럭의 연료비는 배송비에 붙고, 배달 오토바이의 비용은 배달팁에 붙는다. 유가가 오르면 세탁비가 오르고, 항공료가 오르고, 자동차 정비비가 오른다. 따로 떼놓고 보면 작다. 한꺼번에 오르면 월말 카드값에서 먼저 티가 난다.

최근 종량제 쓰레기봉투 품귀 현상은 이 연결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 사례다. 봉투 몇 장을 못 사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중동 원유가 세계로 나가는 좁은 바닷길인 호르무즈 해협, 원유 수입, 나프타 가격, 플라스틱 원료, 봉투 제조업체의 납품가가 줄줄이 연결돼 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 석유화학 원료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 사태 전후 나프타 가격은 톤당 633달러에서 1,089달러로 치솟았다. 품귀 자체는 사재기 심리가 키웠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봉투를 사러 몰려간 이유는 막연한 소문이 아니었다. 석유화학 원료가 흔들리면 생활 속 가장 평범한 물건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이었다.

장보기도 달라진다. 가격표가 크게 바뀌지 않아도 할인행사가 줄고, 1+1이 사라지고, 같은 돈으로 장바구니가 덜 찬다. 물건을 집었다가 내려놓는다. 같은 물건이라면 저렴한 브랜드로 바꾸거나 아예 사지 않는다. 공식 물가는 수백 개 항목을 섞은 평균이다. 사람마다 자주 사는 품목은 다르다. 매일 밥을 먹고, 매주 장을 보고, 매달 카드값을 낸다. 자주 쓰는 항목의 가격이 오르면 체감 물가는 공식 발표보다 크게 느껴진다. 들어오는 돈은 그대로인데 빠져나가는 돈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배달앱과 여행 계획도 같은 방식으로 달라진다. 메뉴 가격이 그대로여도 배달팁이 오르고, 무료배송 조건이 바뀌고, 쿠폰이 줄어든다. 항공료와 숙박비가 부담스러워지면 멀리 가는 여행부터 접는다. 아이와의 약속, 부모님과의 여행, 오래 미뤄둔 휴식이 다시 미뤄진다. 음식점과 숙박업소, 렌터카 업체, 지역 상권에는 오지 않은 손님이고, 사라진 매출이다.

소비자에게는 월말 카드값이 늘어난 일로 보이고, 기업에는 원가 상승 부담으로 돌아온다.

기름은 공장의 연료이자 원료다

한국 제조업에서 기름값은 주유소의 연료비로만 끝나지 않는다. 공장을 돌리는 에너지이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물류비이며,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고무와 포장재로 이어지는 재료비이기도 하다. 소비자는 기름값을 주유소에서 본다. 기업은 원유 가격, 나프타 가격, 물류비, 전기료 청구서에서 본다. 보이는 자리가 다를 뿐, 같은 충격이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국내 제조업 생산비는 평균 약 0.71% 증가한다. 숫자는 작아 보인다. 그러나 마진이 얇은 제조업체에는 견디기 어려운 차이가 될 수 있다. 원유 수입 비중이 중동에 집중돼 있고, 상당 물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은 공급망 불안을 더 키운다.

물론 유가상승이 언제나 곧바로 대량 해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마다 에너지 의존도와 가격 전가 능력이 다르고, 정부 대응과 세계 수요에 따라 충격의 깊이도 달라진다. 다만 지금 문제는 한국 경제 곳곳의 완충지대가 이미 얇아진 상태라는 점이다.

공장은 원가가 조금만 올라도 계산이 달라진다. 원료비와 운송비가 오르면 기업은 가격을 올릴지, 마진을 줄일지, 생산량을 조정할지 다시 본다. 세계 경기가 둔화되고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오른 비용을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올리면 안 팔리고, 안 올리면 남지 않는다.

공장이 원가 상승을 견디기 어려운 이유는 비용이 하나만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료비와 물류비가 오르는 동안 이자도 계속 나간다. 국제결제은행, 흔히 BIS라고 부르는 국제기구의 기준으로 보면 2025년 3분기 말 한국의 기업부채는 2900조 원을 넘어섰다. 여기서 기업부채는 금융회사를 뺀 일반 기업의 빚을 말한다. 빚이 많다는 것은 원가가 오를 때 이자 부담까지 함께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업은 새 투자를 미루고, 채용을 줄이고, 잔업과 특근부터 줄인다.

장부에 매출이 있어도 다음 달이 보이지 않는 기업도 있다. 물건을 팔았다는 기록은 장부에 남지만, 직원 월급과 임대료, 재료값은 통장에서 먼저 빠져나간다. 오늘 나갈 돈을 막지 못하면 내일의 주문도 받을 수 없다. 불황은 문 닫은 공장으로만 오지 않는다. 아직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 안에서 먼저 온다. 줄어든 잔업, 사라진 특근, 채우지 않는 빈자리의 형태로 온다.

유동 인구가 빠져나간 상권은 빈 점포로 채워진다.

 

일자리가 줄면 골목상권도 흔들린다

취업포털 화면이 새로고침된다. 공고는 있다. 그런데 읽어보면 예전과 다르다. 신입을 뽑는다고 쓰여 있지만 직무 경험을 묻는다. 인턴을 모집한다고 쓰여 있지만 프로젝트 경험을 요구한다. 처음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이미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시장이 됐다.

불황은 청년에게 해고로 오지 않는다. 아직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류 합격 연락이 늦어지고, 탈락 이유를 알 수 없는 메일이 반복되는 방식으로 온다. 전체 고용지표가 버텨도 입구까지 안전한 것은 아니다. 2026년 3월 청년층 고용률은 43.6%로 낮아졌고, 청년층 실업률은 7.6%로 상승했다. 처음 일자리를 찾는 청년에게는 다른 풍경이 보인다는 뜻이다.

다른 장면도 있다. 50대 재직자가 희망퇴직 조건표를 본다. 위로금이 얼마인지, 퇴직 뒤 건강보험료는 어떻게 되는지, 남은 대출은 얼마인지 계산한다. 회사는 해고라고 부르지 않는다. 위로금을 내걸고 퇴직 신청을 받는 희망퇴직이라고 부른다. 청년에게는 “일을 해본 적 있느냐”라고 묻고, 중장년에게는 “얼마를 주면 나갈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 처지는 다르지만, 둘 다 같은 고용시장에서 밀린다.

제조업 고용이 줄어들면 충격은 공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단 주변 식당의 점심 손님이 줄고, 작업복을 맡기던 세탁소의 매출이 줄고, 편의점과 숙박업소와 배달 주문도 줄어든다. 잔업이 줄면 저녁 손님이 줄고, 특근이 사라지면 주말 매출이 줄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늘면 단골이 사라진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직장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직장인을 손님으로 삼던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손님이 줄어드는 시장으로 퇴직자들이 다시 들어간다는 데 있다. 회사에서 밀려난 사람은 당장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재취업 문은 좁고, 나이는 부담이 된다. 결국 일부는 다시 가게를 연다. 직장을 떠난 사람이 구직자가 되고, 구직이 막히면 자영업자가 된다. 그러나 시장의 수요가 함께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손님은 줄어드는데 창업자는 늘어난다.

자영업장이 줄거나 주문을 줄이면 납품업체도 함께 흔들린다. 식당이 덜 팔면 식재료 납품이 줄고, 매장이 닫히면 포장재와 비품 주문도 줄어든다. 유통업체가 어렵다는 말은 제조업체가 만든 물건이 최종 소비자에게 닿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비가 막히면 유통이 막히고, 유통이 막히면 제조업의 주문도 다시 줄어든다. 원가 충격은 공장 밖으로 번지고, 결국 다시 공장으로 돌아온다.

건설업 침체가 길어진다

제조업과 골목상권이 함께 흔들리는 동안, 또 하나의 큰 고용 축도 약해지고 있다. 건설이다. 건설 현장이 조용해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일감이다. 철근을 자르는 사람, 레미콘을 붓는 사람, 배관을 잇는 사람, 마감을 마무리하는 사람. 한 현장이 돌아가면 수십 개 업종의 사람이 함께 움직인다. 현장이 멈추면 자재 주문이 줄고, 하도급업체의 미수금이 쌓이고, 일용직의 하루가 끊긴다.

건설업은 단순히 집을 짓는 산업이 아니다. 철강, 시멘트, 레미콘, 목재, 유리, 배관, 전기자재, 운송, 장비, 인테리어, 현장 식당까지 함께 움직이는 내수의 큰 축이다. 착공이 미뤄지고 공사가 멈추고 건설업체 폐업이 늘어난다는 말은 건설사 몇 곳이 어려워졌다는 뜻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감을 따라 움직이던 하도급업체와 자재업체, 장비업체와 일용직 노동자의 소득이 함께 흔들린다는 뜻이다.

그 흐름의 바닥에는 부동산 PF가 있다. PF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줄임말로, 쉽게 말하면 아파트나 상가가 나중에 잘 분양될 것이라고 보고 금융권이 미리 빌려준 돈이다. 분양이 잘 되는 동안은 문제가 없다. 시장이 식으면 그 전제가 먼저 흔들린다. 2025년 말 기준 금융권이 부동산 PF에 물려 있는 돈은 174조 3000억 원이었다. 이미 빨간불이 켜졌거나 부실 위험이 큰 대출도 14조 7000억 원 남아 있었다. 부동산 경기와 분양 성공 여부에 너무 많은 돈이 묶여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PF는 금융권 장부 안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현장의 일감이 줄고, 작은 업체의 현금흐름이 막히는 문제다. 내수를 움직이는 큰 엔진인 건설 경기가 식으면, 그 열기로 버티던 일감과 고용도 함께 식어간다.

건설업 침체는 금융권 부실과 현장의 일감으로 드러난다.

 

위험 수위를 넘은 가계부채

일자리와 일터가 흔들리면 충격은 결국 가계로 내려온다. 줄일 만큼 줄인 사람은 빌릴 수 있는 돈을 확인한다. 카드앱을 열어 한도를 보고, 마이너스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보험사 앱에서 대출 가능 금액을 눌러본다.

가계도 이미 빚의 무게를 안고 있다. 앞서 본 국제결제은행 기준으로 한국의 가계부채도 2025년 3분기 말 2340조 원을 넘어섰다. 생활비가 오르고 소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빚이 많다는 것은 다음 달의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카드사에서 돈을 빌리는 카드론, 급하게 현금을 빌리는 현금서비스, 이번 달 카드값 일부를 다음 달로 넘기는 리볼빙은 이름은 달라도 방향은 같다. 부족한 오늘을 앞으로 넘기는 일이다.

이때 기댈 곳은 정부와 한국은행이다. 그러나 이번 충격 앞에서 그 방어막도 자유롭게 쓰기 어렵다. 금리를 내리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달러로 사오는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더 비싸질 수 있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와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정부가 돈을 더 쓰면 당장의 충격은 줄일 수 있지만, 나랏빚과 이자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정부가 지출을 아끼면 가장 약한 곳부터 먼저 무너질 수 있다.

카드론은 빠르다. 앱 안에서 몇 번 누르면 돈이 들어온다.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그러나 빠른 돈은 대개 비싸다. 높은 금리와 신용점수 하락이 따라온다. 신용점수가 떨어지면 다음 대출의 금리가 더 높아지거나, 아예 대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 보험계약대출도 비슷하다. 보험을 깨지 않고도 보험사에서 돈을 빌리는 방식이라 심리적 문턱이 낮다. 내가 넣어둔 돈에서 잠깐 꺼내 쓰는 것처럼 느껴져 손이 간다. 미래의 안전판이 오늘의 생계비로 줄어드는 것이다.

 

부족한 오늘은 내일의 빚이 된다.

여기서 또 다른 불안이 생긴다. 일해서 버는 돈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불안이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는 그 불안이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월급과 장사 수입으로는 물가와 자산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공포가 사람들을 주식앱과 부동산 호가 앞으로 데려간다. 투자가 아니라 탈출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식시장은 빠르게 달아올랐다. 코스피는 6,000선에서 7,000선까지 가는 데 47 거래일밖에 걸리지 않았고, 5월 초 기준 연초 이후 상승률은 60%를 훌쩍 넘었다. 주가가 뛰자 빚을 내 주식을 사는 돈도 따라붙었다. 금융투자협회 집계 기준으로 신용거래융자는 4월 29일 36조 원을 처음 넘어섰다. 지난해 말 27조 원대였던 잔고가 몇 달 사이 8조 원 넘게 불어난 것이다.

그 돈의 반대편에는 증권사의 수익이 있다. 거래가 늘면 위탁매매 수수료가 붙고, 신용융자가 늘면 이자수익이 붙는다. 올해 1분기 5대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개인에게는 뒤처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 증권사에는 수수료와 이자수익으로 돌아온 셈이다.

일자리는 줄고, 벌이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자산 가격은 혼자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루를 넘기기 위한 빚과 자산을 따라잡으려는 빚은 방향이 다르다. 그러나 시장이 꺾이면 둘 다 같은 자리에 선다. 반복해서 들어오는 소득이 약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위험한 선택지 앞에 선다.

각자도생은 가능한가

각자 버티면 된다는 말은 버틸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충격은 원래 어딘가에 흡수되어야 파괴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계에는 저축이, 자영업자에게는 마진이, 기업에는 현금흐름이 있다. 금융기관은 자본 여력으로, 정부는 재정으로 충격을 나눠 받는다. 이런 여유를 완충지대라 부른다.

문제는 지금 이 완충지대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얇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처음엔 주유소 가격판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 충격은 제조업의 원가표로 옮겨가고, 기업의 근무표와 채용 계획을 바꾸며, 공장 주변 골목과 유통업체의 주문을 흔든다. 건설 현장의 일감을 줄이고, 가계의 카드앱과 보험사 앱을 열게 만들며, 사람들로 하여금 주식 시세와 부동산 호가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따로 보면 각각 다른 문제처럼 보인다. 제조업 위기, 자영업 폐업, 부동산 PF, 카드론, 빚을 낸 투자, 정부의 재정 부담은 서로 다른 기사 제목을 달고 올라온다. 가까이서 보면 제각각 다른 문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 보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 사회가 충격을 흡수할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청년은 첫 일자리를, 중장년과 시니어는 다시 일할 자리를 찾는다.

 

정부는 고용지표가 버틴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체 고용률만 보면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숫자를 한 겹 벗기면 다른 장면이 나온다. 최근 실업자는 한때 100만 명에 육박했고, 청년층 고용률은 내려갔다. 늘어난 일자리도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에 크게 기대고 있다. 제조업과 건설업처럼 민간의 투자와 현장 일감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오히려 줄거나 약해지고 있다. 전체 숫자는 고용 호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래 기대어 살아갈 일자리의 중심부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물가가 오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벌이가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벌이가 따라오지 못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벌이를 만들 일자리와 일터가 함께 줄어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