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구직자는 입사 지원서를 쓰기 전 채용공고만 보지 않는다. 블라인드 같은 익명 커뮤니티를 검색하고, 퇴사자 후기를 찾아본다. 회사 이름 뒤에 ‘연봉’, ‘복지’, ‘야근’, ‘분위기’ 같은 단어를 붙여 검색하기도 한다. 공식 채용공고에는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적혀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말투로 일하는지, 신입은 어떻게 배우는지, 실수했을 때 조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까지는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기업은 지원자에게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이 어떤 조직인지 충분히 설명해 왔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성장 과정, 성격의 장단점, 지원 동기, 입사 후 포부를 묻는 쪽은 늘 기업이었다. 그러나 회사 연혁과 사업 분야, 인재상과 복지 제도만으로 한 조직의 실제 모습을 설명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채용은 오랫동안 일방향 심사에 가까웠다. 지원자는 자신을 드러내고, 기업은 평가했다. 지원자는 탈락해도 이유를 알기 어렵고, 합격하면 그제야 회사의 실제 얼굴을 보기 시작한다. 함께 일할 사람, 보고 방식, 피드백 문화, 업무의 속도, 현장의 암묵지는 입사 후에야 드러난다. 그때 가서 서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늦다. 회사는 “요즘 신입은 금방 그만둔다”라고 말하고, 신입은 “들어와 보니 생각한 회사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채용의 실패는 사람을 잘못 뽑아서만 생기지 않는다. 서로를 너무 늦게 알게 될 때도 생긴다.

2025년 인크루트가 인사담당자 4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신입사원 조기퇴사 이유 1위는 ‘직무 적합성 불일치’였다. 낮은 연봉도 중요한 이유였지만, ‘맞지 않는 사내 문화’와 ‘상사·동료 관계’가 그 뒤를 이었다. 결국 많은 조기퇴사는 조건의 문제만이 아니라, 입사 전에 기대했던 일과 실제 조직의 모습 사이에서 생긴 간극과도 관련돼 있다. 연봉과 보상은 중요하다. 그러나 퇴사의 이유는 입사 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일의 내용과 조직이 일하는 방식으로도 이어진다.
이 문제는 AI 시대에 더 또렷해지고 있다. 자기소개서는 한때 지원자의 생각과 태도를 가늠하는 문서였다. 그러나 이제 매끄러운 자기소개서는 더 이상 온전히 한 사람의 언어라고 보기 어려워졌다. 생성형 AI가 문장을 다듬고, 지원 동기를 정리하고, 입사 후 포부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준다. 구직자도 이 사실을 알고, 기업도 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는 길어질수록 오히려 의심받는 서류가 되어가고 있다.
채용 플랫폼 캐치가 Z세대 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확인된다. 많은 구직자가 채용 절차를 복잡하다고 느꼈고, 간소화가 필요한 전형으로 자기소개서를 가장 많이 꼽았다. AI 확산으로 변별력을 잃은 전형 역시 자기소개서라는 응답이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서류를 줄이고 면접이나 실제 대화를 중심으로 사람을 보자는 요구가 함께 나온다. 문제는 평가가 싫다는 것이 아니다. 형식적인 서류가 사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AI는 지원자의 문장을 매끄럽게 만들었고, 팬데믹은 사람 곁에서 일을 배울 시간을 줄였다. 여기에 코로나 학번이 사회로 들어오고 있다는 현실도 겹친다. 팬데믹 시기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세대는 동아리, 선후배 관계, 대면 팀 프로젝트, 현장실습, 아르바이트와 인턴 경험을 자연스럽게 쌓을 통로가 좁아진 채 사회로 나오고 있다. 이들을 두고 단순히 “사회성이 부족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정확하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관계와 실습 속에서 배웠어야 할 조직의 암묵지를 익힐 기회가 부족했다는 데 있다.

직장에는 문서로 다 적히지 않는 배움이 많다. 언제 메시지보다 전화가 먼저인지, 어디까지 스스로 찾아본 뒤 질문해야 하는지, 구두 지시를 들은 뒤 어떻게 되물어야 하는지, 짧은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움직여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학교 시험처럼 정답을 외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 부딪히고, 관찰하고, 묻고, 다시 해보며 익히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청년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알아서 눈치껏 배우라”고만 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기업은 자신들의 일하는 방식을 입사 전에 더 선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모르면 바로 묻는 것이 중요한지, 급한 일은 문자보다 말로 먼저 알려야 하는지, 처음에는 반복적인 일과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지, 실수는 숨기지 않고 공유해야 하는지, 기록은 왜 남기는지 미리 설명해야 한다.
이제 기업도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채용은 더 이상 한쪽만 자신을 증명하고, 다른 한쪽은 평가만 하는 과정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다만 기업의 자기소개서는 화려한 비전 선언문이나 복지 목록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기업의 자기소개서는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신입은 이 회사에서 어떻게 배우는가. 선배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모르는 것을 물었을 때 조직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실수는 어떻게 다뤄지는가. 배운 것은 어디에 남는가. 작은 일은 어떻게 경력이 되는가.
물론 모든 회사가 같은 방식을 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입사 전에 회사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김포의 한 목재회사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채용공고와 면접 사이에 놓일 작은 웹페이지를 준비하고 있다. 지원자는 회사에 직접 방문하거나 면접장에 앉기 전에도 QR코드나 링크를 통해 회사를 미리 들여다볼 수 있다. 사내에서는 이를 ‘컬처&피플 링크트리’라고 부른다. 이름은 낯설지만, 쉽게 말하면 입사 전 회사를 살펴보는 안내판에 가깝다.
그 안에는 회사 소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제품과 공간을 다루는지, 구성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소통하는지, 처음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배우는지, 왜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지까지 담으려 한다. 입사 전에는 링크트리를 통해 회사가 어떻게 일하고, 신입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 보여준다. 입사 후에는 사내 온라인 카페에 일일 배움 일지를 남기며 그날 보고 들은 것을 자신의 말로 정리하게 한다.

시간이 지나 업무를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 그 기록은 블로그의 일일업무일지로 이어진다. 이 회사에서 기록은 신입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다. 팀장 역시 블로그에 일일업무일지를 쓰며 현장에서 생긴 문제의식과 업무의 맥락을 남긴다. 기록은 아래에만 요구되는 숙제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된다.
물론 이것은 직원의 사생활을 공개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 회사는 업무용 기록 계정을 따로 둘 수 있도록 권장하고, 회사 내부 정보나 업무 배움에 관한 글은 공개 범위를 제한해 나눈다. 음악, 여행, 취미, 일상에 관한 글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기록이 평가 도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성장의 발판이 아니라 감시의 기록이 된다. 공개 범위를 본인이 정하도록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영업부의 한 3년 차 직원은 그렇게 쌓은 기록을 고객과 만나는 글로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배운 나무 이야기를 블로그에 기록하고, 그중 일부를 매주 목요일 고객 뉴스레터로 보낸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 편집 회의가 있다는 점이다. 혼자 고르고 혼자 보내는 방식이 아니다. 선배들은 글의 사실과 맥락을 함께 점검하고, 부족한 업무 지식을 알려준다.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은 바로잡고, 미처 몰랐던 현장의 맥락은 그 자리에서 배운다. 그렇게 고쳐 쓴 글은 고객에게 보내지고, 새로 배운 내용은 다시 블로그에 남아 직원들과 공유된다.
그렇게 한 사람의 경험은 개인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는다. 회사에는 다음 사람이 배울 자료로 남고, 개인에게는 자기 일을 설명하는 포트폴리오로 쌓인다. 요즘 말로 ‘물경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분명 일은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세울 만한 전문성이나 성과로 남지 않은 경력이다. 그것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맡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배운 것이 기록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공유되지 않고, 피드백을 거쳐 다듬어지지 않을 때 생긴다.
회사가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은 화려한 문구를 내거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그 안에서 어떻게 배우고, 작은 일이 어떻게 경력으로 쌓이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지원자만 자기소개서를 쓰던 시대는 오래 이어졌다. 그러나 제출할 서류가 많아진다고 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AI가 지원자의 문장을 매끄럽게 만들고, 조직의 암묵지를 충분히 익히지 못한 세대가 사회로 들어오는 지금, 질문은 기업 쪽으로 돌아온다. 회사는 자신이 어떤 곳인지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람이 그 안에서 어떻게 배우는지 말할 수 있는가. 실패와 질문을 어떻게 다루는 지도 보여줄 수 있는가.
지원자에게만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던 시대가 끝났다면, 이 질문들 앞에서 기업은 무엇을 써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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