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및 저연차 직원의 직장 적응과 성장을 돕는 온보딩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1:1 멘토링 시간에 입사 3년 차 직원이 직접 들려준 생산 현장 경험을 그의 시점에서 정리한 기록입니다.

입사 3년 차인 지금, 내가 주로 맡는 일은 영업과 견적, 그리고 주문장 작성이다. 우리 회사에서 물량 확인을 위해 작성하는 주문장은 ‘예정 주문장(product order)’이라고 부른다. 아직 수기로 작성하는 업무 중 하나다. 발주처에서 물량서를 보내오면 수종명, 치수, 수량, 가공 형태를 담당자와 확인한 뒤, 예정 주문장을 작성해 생산 부서로 전달한다.
제재소에서 목재 주문을 받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건조재 확보량이다. 사내에서는 보통 ‘재고’라는 표현보다 ‘확보량’이라는 말을 쓴다. 합판이나 페인트처럼 창고에 규격별로, 색상별로 몇 개나 쌓여 있는지 세어보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건축 내외장재나 가구재 등으로 사용되는 목재는 대부분의 경우 열기건조까지 마친 건조재여야 한다. 원목을 판재나 각재로 제재하고, 자연건조하고, 다시 열기건조까지 마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예정 주문장을 통해 먼저 선수 조사를 한다. 필요한 규격과 수량에 맞춰 건조가 끝난 목재 확보량이 주문 예정량보다 넉넉한지 부족한지 확인한다. 확보되어 있는 판재와 각재들은 폭과 두께, 길이가 제각각이다. 그래서 길이 규격부터 체크한 뒤 폭과 두께를 맞춰 보며 생산할 수 있는 수량을 가늠한다.
확보된 목재가 모자라면 주문 자체를 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목재는 벽돌처럼 부족하다고 바로 찍어낼 수 있는 성격의 자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재 주문은 덥석 받을 수 없다.
이번 포항 현장도 그렇게 시작됐다. 작년 겨울, 설계와 디자인을 함께하는 업체에서 방문했다. 건물 외부에 사용될 목재를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외벽체뿐만 아니라 오브제, 파고라 등 여러 공간이 함께 이야기되었다. 논의를 거치며 최종 적용 범위는 외부 벽체 쪽으로 좁혀졌다.
이후 여러 수종이 검토 대상에 올랐다. 3개월에 걸쳐 조정과 논의가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여러 조건을 종합해 수종은 크윌라로 결정되었다.

수입목은 학계에서 쓰는 학명, 산지에서 쓰는 산지명, 유통 과정에서 현지 언어와 정서에 맞게 변형된 다양한 유통명 등으로 불린다. 크윌라는 국내에서 흔히 멀바우로도 불리는 수종이다. 산지와 유통 시장에 따라 크윌라, 멀바우, 이필, 베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영어권의 몰루칸 아이언우드(Moluccan ironwood),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의 카유 베시(kayu besi), 일본의 태평양철목(太平洋鉄木)이라는 이름에는 공통된 감각이 있다. 철처럼 단단한 나무라는 인상이다.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널리 자생하는 이 나무는 그저 색이 예뻐서 쓰인 것이 아니라, 물성과 상징성이 함께 인정받은 목재였다. 피지에서는 베시가 전통 사원과 추장 가옥의 중심 기둥, 신성한 카누, 중요한 일을 알리는 전통 북에 쓰였다. 남태평양 여러 지역에서는 집 기둥과 카누 용골, 도구와 공예품으로도 쓰였다. 오래 써본 사람들이 이 나무의 물성을 경험으로 확인해 온 셈이다.
크윌라는 붉은 갈색 계열의 깊은 색감과 단단한 물성을 가진 나무다. 하지만 외장재로 쓸 때는 색감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현장 노출 조건, 건조 상태, 가공 방식, 시공 후 보이는 선, 유지관리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번 포항 현장은 주문 물량도 많았고, 납기 일정도 빠듯했다. 결국 나도 약 2주 동안 생산 현장 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평소에는 사무실에서 예정 주문장을 쓰고 견적을 확인하던 입장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쓰던 주문장 한 줄이 실제 목재 가공 제품이 되는 전 과정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된 셈이다.
현장에 나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다. 가공 작업은 기계를 돌리면 되는데, 그전에 이 많은 소재를 어떻게 분류해야 하지. 주문장에는 납품할 목재 가공품을 만들 소재의 길이, 폭, 두께, 수량이 한 줄씩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숙성창고에 보관된 목재는 지게차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공간만 있을 정도로 빽빽하게 쌓여 있다. 같은 크윌라 수종만 모아놓은 더미 안에서도 판재의 폭과 기장은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목재 가공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선하는 일은 소재를 선별하는 것이다. 발주 규격에 맞춰 꺼내진 크윌라를 살펴보니 일정한 것도 있었지만, 폭과 두께가 뒤섞인 소재도 적지 않았다. 선별은 단순히 보기 좋게 정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손실분(loss)을 줄여 수율을 높이고 작업성을 높이기 위한 과정이었다.
수율이라는 말은 이제 일상에서도 자주 들린다. 투입한 재료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나오느냐는 뜻이다. 목재 현장에서도 이 말은 중요하다. 최종 마감 폭이 150mm인데 160mm 판재와 170mm 판재를 가리지 않고 다시 켜면 버려지는 부분이 늘어난다. 자연스레 로스율은 올라가고 수율은 떨어진다. 생산원가가 오른다는 뜻이다.

작업성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단면 형상을 가공하는 7축 몰더에 날을 세팅해 놓은 상태에서 투입되는 판재의 규격 편차가 크면 날물이 쉽게 무뎌진다. 작업 시간은 늘어나고, 날물과 부자재 소모도 커진다. 가공 중 행여 목재가 파손되면 원자재 손실이 추가된다. 결국 소재 선별은 품질뿐 아니라 생산 효율과 원가 절감까지 연결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폭은 150mm, 180mm, 210mm 기준으로 나눴다. 두께는 24mm와 30mm로 다시 구분했다. 기장도 1800mm부터 3600mm까지 확인해 정리했다. 줄자를 대고, 표시하고, 다시 옮겼다. 종이 주문장 위에 볼펜으로 적던 숫자를 판재 위에 분필로 옮겨 적으니 손끝에 더욱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졌다.
직접 해보니 생산 작업의 절반 이상은 실제 가공이 아니라 가공 전 준비에 가까웠다. 일정이 빠듯할수록 준비 시간을 줄이고 싶어진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반대였다. 일정이 빠듯할수록 준비를 대충 할 수 없었다. 폭과 두께를 대강 맞추면, 뒤에서 더 큰 시간이 걸린다. 부족한 규격을 늦게 발견하면 그때부터 다시 소재를 찾고, 제재하고, 가공 순서를 바꿔야 한다.

선별을 마치고 물량을 다시 확인해 보니 일부 폭의 소재가 발주량에 비해 부족했다. 사무실에서는 부족한 수량이 숫자로 보인다. 하지만 생산 현장에서는 그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어떤 소재를 꺼낼지, 어느 방향으로 켤지, 어느 정도 여유를 보고 가공할지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판단해야 했다.
결국 창고 안쪽에 보관되어 있던 크윌라 라이브엣지 우드슬랩을 꺼냈다. 사내에서는 흔히 ‘빵재’라고 부르는 소재다. 원목 상태가 좋아 두텁고 넓게 제재해 둔 슬랩 판재라 사이(才) 당 가격도 높았다. 아까운 소재였지만, 폭과 두께에 맞는 건조재가 더 이상 없었다.

부족한 규격을 맞추기 위해 이 슬랩을 다시 켜는 작업, 곧 리쏘잉(resawing)을 해서 생산에 투입해야 했다. 이때부터 나무의 결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수종명과 규격, 수량을 먼저 봤다. 크윌라 몇 장, 몇 폭, 몇 미터. 주문장 위에서는 그렇게 정리된다. 그런데 제재대 위에 올라간 나무는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같은 크윌라라도 어떻게 켜느냐에 따라 결의 방향과 표정이 달라졌다. 글로 보거나 사진으로만 보던 나무의 결을 현장에서 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크윌라를 보다 보면 노란빛이나 금빛에 가까운 점이 보일 때도 있다. 어떤 목재는 더 붉고, 어떤 목재는 더 짙고, 어떤 목재는 결이 더 강하게 드러났다. 같은 이름으로 묶인 수종 안에서도 목재는 한 장씩 달랐다.
톱날 상태도 중요했다. 크윌라는 단단한 활엽수다.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톱날에 부담이 간다. 톱날이 조금만 어긋나도 그 영향이 목재 단면에 그대로 드러났다. 대차 띠톱으로 제재하는 과정에서 톱 상태가 일정하지 않으면 단면이 물결처럼 울퉁불퉁하게 나왔다. 톱날을 정비한 뒤에는 그 현상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도 확인했다.

그동안 품질이라는 말을 들으면 완성된 제품의 표면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니 품질은 훨씬 앞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건조재를 고르는지, 어떤 방향으로 켜는지, 톱날 상태가 어떤지, 가공 전에 얼마나 잘 선별해 두는지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결정되고 있었다.
이번 현장의 가공 방식은 반턱쪽매였다. 외벽체를 메지, 그러니까 판재 사이의 틈새를 메우는 줄눈 없이, 틈이 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한 방식이었다. 반턱쪽매는 판재의 일부를 턱처럼 깎아 서로 겹치듯 맞물리게 하는 가공이다. 판재가 단순히 맞닿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을 덮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정면에서 봤을 때 틈이 덜 드러나고 면이 비교적 정돈되어 보인다.
처음에는 메지 유무가 단순히 디자인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업을 해보니 홈을 파느냐, 턱을 내느냐에 따라 소재 선택과 가공 방식이 달라졌다. 건축 현장에서 보이는 선 하나가 목재소 안에서는 전혀 다른 준비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메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목재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숨을 쉬듯 늘고 줄 때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여유 공간이었다.

가공부 팀장님이 작업 중 이런 이야기를 했다.
“메지의 유무에 따라 소재 선택과 가공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니, 항상 현장과 충분히 상의해야 해.”
그 말을 현장에서 들으니 다르게 이해됐다. 메지를 둘 것인지, 틈을 덜 보이게 할 것인지는 단순히 모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해당 수종의 수축률, 소재의 폭과 두께, 건조 상태, 가공 단면, 시공 방식까지 함께 관여하는 결정이었다. 설계 단계에서 정한 선 하나 때문에 생산 현장에서는 소재 선별과 가공 조건이 바뀌는 것이다.
몰더에 투입하기 전 단면포 작업을 먼저 진행했다. 단면포는 판재의 두께와 평을 잡아주는 준비 공정이다. 목재의 기준면과 두께가 안정되어야 이후 몰더에서 홈과 턱이 일정하게 나온다. 몰더는 목재의 폭, 두께, 홈, 턱 같은 형상을 일정하게 만들어주는 장비다. 이번 작업에서는 반턱쪽매 단면에 맞춰 크윌라가 하나씩 가공되었다. 같은 방향, 같은 치수, 같은 턱이 반복되어야 현장에서 판재가 안정적으로 맞물릴 수 있다.
그후 며칠 동안 이어진 몰더 가공 과정에서 주문장에 적힌 규격과 그린 가공 형태가 실제 목재 가공품의 형상으로 바뀌는 장면을 한참 지켜봤다. 오후 작업을 마치고 작업대 위에 놓인 주문장을 회수했다. 주문장의 내용이 뭔가 밋밋하게 느껴졌다.

약 2주 동안 이어진 작업 끝에 크윌라 외장재 가공이 마무리되었다. 소재를 꺼내고, 규격별로 선별하고, 부족한 물량을 제재하고, 단면을 잡고, 반턱쪽매 형상으로 가공한 뒤 포장까지 마쳤다.
포장된 목재 가공품이 트럭에 실리는 것을 보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당에 뒤섞여 있던 판재들이었다. 줄자를 대고, 표시하고, 켜고, 다시 가공했던 목재가 이제는 포항 현장으로 갈 외장재가 되어 있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주문장 한 줄의 여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함께했다.
그렇게 상차를 마친 크윌라는 곧 포항 현장으로 떠났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출고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쓴 주문장 한 줄이 외장재가 되기까지, 그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기술자의 고민과 작업 시간이 있었다. 이제는 그 한 줄을 쓸 때 조금 더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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