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박람회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기업 부스마다 안내문이 붙었고, 취업준비생들은 이력서를 들고 줄을 섰다. 겉으로 보면 구직자와 기업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들리는 말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한 취업준비생은 말했다. "지원할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막상 넣고 싶은 곳은 잘 안 보여요." 몇 걸음 떨어진 기업 부스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지원자는 꾸준히 들어오는데, 현장에서 바로 함께 일할 사람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두 말은 서로 만나지 못했다. 청년은 갈 만한 회사를 찾지 못하고, 기업은 믿고 뽑을 사람을 찾지 못한다. 오늘의 채용시장이 안고 있는 불일치는 바로 이 장면 안에 들어 있다.

숫자도 차갑다. 올해 1분기 실업자는 5년 만에 다시 100만 명대에 들어섰고, 그중 청년층은 27만2000명으로 전체의 4분의 1을 넘었다. 대졸 이상 ‘쉬었음’ 청년도 2021년 14만9000명에서 2025년 17만8500명으로 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노동시장 바깥에 머무는 청년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청년이 일하기 싫어졌다는 신호가 아니다.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문제는 일자리의 총량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 사회는 이런 취업 빙하기를 이미 한 번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취업은 생존의 문제가 됐다. 회사는 사람을 줄였고, 평생직장의 약속은 무너졌다. 신문 채용면을 뒤지고, 인맥을 묻고, 어디에서 사람을 뽑는지 알아내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바로 그 시기 인터넷 채용 플랫폼이 등장했다. 인크루트는 1998년 6월 국내 최초로 인터넷 채용 시스템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흩어져 있던 채용정보가 온라인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구직자는 더 많은 기회를 볼 수 있었고, 기업은 더 많은 지원자를 만날 수 있었다.
외환위기 때 닥쳐온 첫 번째 취업 빙하기에 채용 플랫폼은 구직자들에게 오아시스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문제는 구인 정보 부족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맞이한 두 번째 취업 빙하기의 문제는 신뢰 부족이다.
채용 앱을 열면 공고는 넘친다. 문제는 그 공고 너머의 회사를 믿기 어렵다는 데 있다. 청년은 구인 공고를 올린 지역 중소·중견기업이 실제로 어떤 회사인지 알기 어렵고, 기업은 지원자가 채용 플랫폼에 기재된 정보만 가지고 실제로 어떤 경험과 태도를 가진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청년은 이름난 대기업과 공공기관으로 몰리고, 기업은 점점 더 검증된 경력직을 선호한다.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는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어 정보 비대칭 문제를 설명했다. 파는 사람은 차의 상태를 알지만, 사는 사람은 알기 어렵다. 그러면 좋은 차와 나쁜 차가 함께 의심받고, 결국 좋은 차가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
지금 채용시장도 비슷하다. 좋은 지역 기업도 잘 보이지 않으면 외면받고, 성실하게 일할 청년도 검증할 방법이 없으면 의심받는다. 오늘의 채용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일자리 부족이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기업 정보와 해석되지 않는 청년 경험이 만든 신뢰 부족이다.
이 신뢰 부족은 구체적인 얼굴을 갖고 있다. 지역 기업의 현실은 청년이 상상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어떤 회사는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해외에 부품을 납품하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낡은 제조업체처럼 보인다. 어떤 회사는 대기업 협력망 안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채용공고 몇 줄만으로는 그 산업적 위치가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회사는 지방 산업단지 안에서 작지만 단단한 기술을 쌓아왔지만, 청년의 눈에는 그저 ‘처음 들어보는 회사’로 지나간다.
기업도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 "성장 가능성", "가족 같은 분위기", "젊은 인재 환영" 같은 말만으로는 청년을 설득하기 어렵다. 청년이 알고 싶은 것은 더 구체적인 것이다. 이 회사가 무엇을 만들고, 신입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며, 급여와 처우는 정당한지, 처음 6개월 동안 무엇을 배우고, 몇 년 뒤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다. 청년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월급의 자리가 아니라 첫 경력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 정보가 보이지 않으면 좋은 기업도 보이지 않는 일자리가 된다.
반대로 청년의 경험도 경력으로 제대로 읽히지 못한다. 방학 동안 일한 아르바이트, 학기 중 참여한 프로젝트, 짧은 인턴십은 졸업 후 이력서 한 줄로 압축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 경험이 실제로 어떤 일을 뜻하는지 해석하기 어렵다. 청년은 "경험이 있다"라고 말하지만, 기업은 "무슨 경험인지 모르겠다"라고 느낀다. 이 간극이 깊어질수록 기업은 경력직을 찾고, 청년은 첫 경력을 쌓을 기회를 잃는다. 신뢰의 빈틈은 그렇게 더 넓어진다.
이 빈틈을 누가 메울 것인가.
현재 민간 채용 플랫폼 업계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이들은 공고를 모으고, 광고를 팔고, 기업회원과 구직자 회원을 확보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공고 게시와 광고 중심 모델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채용 플랫폼들이 데이팅 앱, 운세·사주, 명함 앱, 긱워커 서비스 같은 비채용 영역으로 사업을 넓히는 흐름도 이런 갈림길의 신호로 읽힌다. 실제로 사람인의 반기보고서에는 비채용 영역으로 운세 서비스 ‘포스티니’와 데이팅앱 ‘비긴즈’ 등을 출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데이팅 앱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운세 서비스가 무의미하다는 말도 아니다. 기업이 생존을 위해 새 수익원을 찾는 일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이다. 사람과 일을 연결해 온 플랫폼의 다음 시장이 정말 본업 바깥에 있을까. 취업 빙하기의 청년과 인재난을 겪는 지역 기업 사이에 신뢰의 간극이 이렇게 크게 벌어져 있다면, 그 부분이야말로 채용 플랫폼이 가장 잘 메울 수 있는 본업의 다음 시장 아닌가.
채용 플랫폼의 자산은 공고의 양이 아니라 연결의 데이터다. 기업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구직자가 어떤 정보를 찾는지, 어떤 직무에서 미스매치가 반복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봐온 경험이다. 그 역량이 본업과 먼 곳으로 흩어지기보다, 본업의 가장 깊은 문제를 푸는 데 쓰인다면 채용 플랫폼은 다시 사회적으로 필요해질 수 있다.
플랫폼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지역 기업의 정보를 표준화된 포맷으로 전환해서 공개하고, 재학생과 청년의 일 경험이 포트폴리오처럼 기록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과 학생 사이에서 방학 아르바이트와 학기 중 단기 계약, 현장실습, 인턴십, 정규직 전환형 채용을 잇는 것이다. 그리고 청년의 크고 작은 일 경험이 기업 인증을 거쳐 사실 확인형 경력 기록으로 남도록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더 많은 공고를 게시하는 게 아니라, 청년이 사회로 들어가는 여러 갈래의 통로를 설계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이력 검증은 사람을 점수화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플랫폼이 구직자의 성격과 태도를 별점으로 매기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낙인 장치가 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평판 점수가 아니라 사실 확인형 경력 기록이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했는지, 어떤 근무 형태였는지, 어떤 직무를 맡았는지,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 계약 기간을 이행했는지 같은 확인 가능한 정보를 기업 인증과 본인 동의를 거쳐 남기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이 감시 장치가 되지 않으려면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 기록의 소유권은 청년에게 있어야 하고, 공개 범위는 본인이 정해야 한다. 기업은 평가자가 아니라 사실 확인자에 머물러야 한다. 기업 정보 역시 홍보 문구가 아니라 확인 가능한 항목 중심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력 검증은 감시가 아니라 청년에게는 경력 자산이 되고, 기업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채용 자료가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공통 언어다. 청년의 경험을 단순히 ‘아르바이트했다’는 말 한 줄에 묻어두지 않고, ‘무슨 일을 수행했는지’로 번역하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국가직무능력표준, 즉 NCS는 그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다.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기술·소양 등의 내용을 국가가 산업부문별·수준별로 체계화한 기준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도 산업현장의 기술 변화와 신규 인력 수요에 맞춰 NCS를 개발·개선하고 있다. 일과 교육훈련, 자격을 연결하는 것이 그 사업의 골자다.
물론 NCS를 그대로 행정적으로 덧씌우자는 말은 아니다. 청년의 짧은 일 경험을 기업마다 제각각 다른 말로 남기지 말고, 최소한 해석 가능한 직무 언어로 기록하자는 뜻이다. "사무보조를 했다"는 말 대신 어떤 자료를 정리했는지, 어떤 문서를 작성했는지, 어떤 고객 응대나 생산관리 업무를 보조했는지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짧은 아르바이트와 인턴 경험도 막연한 경력이 아니라 다음 채용에서 해석 가능한 직무 경험이 된다.
대학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학생에게 취업 상담만 해주는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생이 학교 밖에서 어떤 일을 해보고, 어떤 책임을 맡았는지 기록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성적표만 발급하는 대학에서, 사회 진입의 발자취를 정리해 주는 대학으로 역할이 넓어져야 한다. 취업지원센터와 현장실습지원센터가 단순한 행정 창구가 아니라 학생의 경험을 기록하고 기업과 연결하는 허브가 될 때, 대학과 노동시장의 거리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신뢰는 한쪽의 기록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청년의 경험이 기록되어야 하듯, 기업의 실제 모습도 드러나야 한다. 지금도 기업 리뷰 서비스는 있다. 그러나 주관적 리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좋은 회사가 누군가에게는 나쁜 회사일 수 있다. 필요한 것은 평점 경쟁이 아니라 사실의 공개다. 이 회사가 무엇을 만드는지, 신입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처음 6개월 동안 무엇을 배우는지, 근무시간과 보상은 어떤지, 안전과 복지는 어떻게 관리되는지, 청년이 어떤 경로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일정한 형식으로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이것도 보여주기식 홍보로 흐르면 안 된다. 기업이 '가족 같은 분위기'나 '성장 가능성' 같은 말만 반복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플랫폼은 기업이 최소한 공개해야 할 항목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업종별 직무, 교육 방식, 근무 조건, 안전 기준, 청년 직원의 성장 경로를 확인 가능한 방식으로 제시해야 한다. 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지방상공회의소 같은 협단체가 참여해 업종별 공동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도 있다. 그래야 기업 정보는 광고가 아니라 신뢰 자료가 된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는다면 채용 플랫폼은 더 이상 공고를 유통하는 서비스에 머물지 않는다. 청년의 첫 경험과 지역 기업의 기회를 연결하는 사회적 인프라가 된다. 청년은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을 듣는 대신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얻고, 기업은 무조건 사람을 뽑으라는 압박 대신 검증 가능한 경험을 가진 청년을 만난다. 대학은 취업률 숫자만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이 생태계 안에서 전공 지식과 사회 경험을 함께 쌓은 예비 사회인을 길러내는 사회 진입의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한국형 채용 인프라다. 공고를 더 많이 게시하는 모델이 아니라, 청년의 경험과 기업의 신뢰를 함께 축적하는 모델이다.
첫 번째 취업 빙하기에 채용 플랫폼은 일자리 정보의 오아시스였다. 두 번째 취업 빙하기에 채용 플랫폼은 신뢰와 경험의 오아시스가 되어야 한다. 공고를 보여주는 회사에서 청년의 첫 경력을 설계하는 회사로, 광고를 파는 플랫폼에서 지역 고용 생태계의 신뢰 인프라로 진화해야 한다. 그것이 30년 전 구인구직 사이트로 출발한 채용 플랫폼에게 다가온 두 번째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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