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dman📒note

정직하지 못한 업자인가, 실력 없는 목수인가

mindofwoodman 2025. 11. 29. 09:46

퇴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주말 아침 침대에서 한 번쯤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나 숲이 내려다보이는 들판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꿈. 한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고 있을 그 장면 속에는 언제나 비슷한 모양의 집이 등장한다.

푸른 잔디와 하얀 목재 사이딩, 지붕 밑 조그만 다락방, 현관 앞 흔들의자. 미국 영화와 드라마가 수십 년간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미국식 목조주택의 이미지다.

우리는 왜 그 집에 끌릴까. 차가운 회색빛 콘크리트와 달리, 나무는 숨을 쉬고 사람을 품는다는 믿음. 하지만 그 믿음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폭의 그림 같은 정원 딸린 주택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2008년 북미 목재 산업 시찰 당시 촬영한 목조 주택 조성 현장



토마토를 씹을 것인가, 케첩을 뿌릴 것인가

나무 집에 대한 한국적 원형은 한옥으로 볼 수 있다. 굵직한 기둥과 보가 무게를 떠받치는 중량 목구조. 흙과 바람이 드나들고, 나무가 가진 물성과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형태다. 자연의 재료를 다듬어 원형에 가깝게 쓴다는 점에서, 갓 수확한 생토마토를 그대로 씹어 먹는 것과 비슷하다. 손도 많이 가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재료 자체의 건강함이 느껴지는 방식이다.

반면 미국의 목조주택은 이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산물이다. 보통 ‘투바이’라고 불리는 구조용 판재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그 위에 합판과 석고보드를 붙인다. 레고 블록처럼 규격화된 자재를 조립하듯 빠르게 집이 올라간다. 이 구조는 자연에서 유래한 천연재료를 쓰겠다는 이유보다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주택을 대량 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빠르게 지을 수 있지만, 그만큼 밀폐성이 높아졌고, 전통 한옥처럼 자연스럽게 바람이 드나드는 구조는 아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것은 생토마토가 아니라 ‘토마토 케첩’에 가깝다.

케첩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케첩은 싸고, 보관이 쉽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다만 케첩은 생토마토가 아니다. 미국의 목조주택이 딱 그렇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런 구조를 선택했을까.

첫째, 나무가 석유만큼 쏟아지는 나라다. 미국과 캐나다의 숲은 자연 그대로의 산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심고 기르고 베어내는 거대한 ‘나무 농장’에 가깝다. 한국은 나무를 수입해서 쓰지만, 미국은 수출도 하는 임업 강국이다.

둘째, ‘레미콘 90분의 법칙’ 때문이다. 콘크리트 반죽은 공장에서 출하된 지 90분 안에 붓지 않으면 굳어버려 쓸 수 없다. 땅덩이가 좁은 한국은 어디든 배달이 가능하지만,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레미콘 차가 닿을 수 없는 곳이 태반이다.

셋째, 살인적인 인건비다. 미국에서 콘크리트로 집을 지으려면 목조보다 훨씬 비싸다. 숙련된 기술자도 부족하다. 반면 경량 목구조는 망치와 못만 있으면 비숙련 노동자들도 몇 개월이면 뚝딱 지을 수 있다.

넷째, 그들에게 집은 평생 사는 곳이 아니다. 미국인은 평생 평균 11번 이사를 다닌다고 한다. 5년 살다 팔고, 또 사고, 또 판다. 한국인에게 집이 ‘대를 잇는 자산’이라면, 미국인에게 집은 ‘자동차보다 조금 큰 내구재’에 가깝다. 그런 집에 100년 갈 콘크리트를 부을 이유가 없다.

경량 목구조는 로망이 아니라 생존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집이 건강할까. 빠르게 짓고, 단단히 밀폐해서 단열하고, 합판으로 막은 그 집 안의 공기는 정말 깨끗할까. 많은 이들이 나무니까 콘크리트보다 덜 해롭고 사람에게 더 좋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캐나다 작가 앤절라 홉스의 이야기는 이 환상에 균열을 낸다.

그녀는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한적한 마을에서 오래된 목조주택을 리모델링했다. 처음 1년은 괜찮았다. 나무 향기가 집안을 채웠고, 창밖으로 숲이 보였다.

문제는 2년째부터 시작되었다. 설명하기 힘든 증상들이 이어졌다. 두통, 피로감, 가슴 답답함. 의사는 원인을 찾지 못했고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하지만 집을 떠나 있을 때는 증상이 사라졌다.

결국 그녀는 벽을 뜯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습기를 머금은 구조재 사이로 번식한 곰팡이와 합판·보드에서 배어 나온 화학물질에 갇힌 공기를 마주한다. 바람길을 잃은 집이, 그 안에 사는 사람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책을 썼다. 『Sick House Survival Guide』. 제목 그대로, 아픈 집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녀의 경험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정작 그녀도, 항우울제를 처방해 준 의사도 자신이 겪는 증상이 집 때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무렵, 건축자재에서 VOCs(휘발성 유기화합물)가 대량 방출된다는 사실은 이미 업계에 알려져 있었다.

소비자는 몰랐을지 몰라도, 공급자까지 몰랐을까. 이 질문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의 현장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2008년 북미 목재 산업 시찰 당시 촬영한 목조 주택 조성 현장 (본문 내용과 무관함)

 

 

해변에서 공원까지, 나무는 죄가 없다

 

얼마 전 인천 앞바다의 한 섬을 걷다, 오래된 보행 데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낡아 보이는 데크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는 순간, “이 데크가 왜 이렇게 일찍 무너졌는지” 모든 이유가 한 번에 보였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나무가 썩어서 무너진 거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데크 표면의 나무는 아직 제 모양을 버리지 않았다. 색이 바래고 표면이 갈라졌을 뿐, 나무 자체는 버텨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밑이었다.

철골 구조물이 바닷바람에 녹아 붉게 부풀어 있었고, 나무를 고정하던 피스(나사)들은 이미 녹물로 일그러져 돌처럼 굳어 있었다. 해안이라면 당연히 스테인리스나 용융아연도금 강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 현장은 몇 푼 아끼려는 듯, 얇게 방청 페인트만 바른 일반 철재를 썼다.

 

심하게 부식된 해변가 데크길

 

결과는 너무나 단순하다. 염분은 철을 갉아먹고, 철이 무너지면 아무리 비싸고 좋은 목재 데크라도 함께 무너진다. 목재가 아니라, 그 목재를 받쳐줘야 할 사람의 선택이 먼저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장은 그 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며칠 뒤, 마포의 한 공원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보았다. 주말이라 공사 인부도 없어, 나는 천천히 시공 중인 데크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재료는 나쁘지 않았다. 모양새를 갖춰가는 강재 구조물, 가지런히 나열된 열대 하드우드 데크재. 자재만 놓고 보면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번엔 제대로 하려나” 싶은 마음으로 둘러보던 참이었다.

 

공원 내 한창 조성 중인 데크 쉼터


그런데 발밑을 보는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다.

지면과 데크 하부 사이가 5~8cm. 성인 남자 주먹 하나 들어갈까 말까 한 높이였다. 통풍이 될 리 없는 구조였다. 어떤 구간은 구조재가 흙에 닿기 직전이었고, 그 아래에는 자갈 배수층도, 제초 매트도 없었다. 비가 오면 토양에서 습기가 올라오고, 그 습기는 빠져나갈 길 없이 갇힐 수밖에 없다.

아무리 비싼 목재를 깔아도, 아무리 도금 강재를 써도 나무 밑에 ‘바람길’이 없다면 그곳은 곧 습기로 가득한 작은 지하실이 된다. 3년 안에 뒷면이 까맣게 썩어 교체 공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현장에서 이런 장면을 셀 수 없이 봐왔다. 그리고 한 가지 진실만은 확신한다.

나무는 비를 맞아서 썩지 않는다. 젖은 채로, 마르지 못해서 썩는다. 좋은 데크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목재가 아니라, 잘 마를 수 있는 구조다.

나무는 정직한 재료다. 습하면 썩고, 마르면 산다. 수종이 달라도, 가격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원리가 예산 절감, 공사 기간 단축, 혹은 그저 ‘몰라서’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무시된다. 철재 몇 만 원을 아끼다가 수억짜리 산책로가 내려앉고, 바람길 10cm를 확보하지 않아 3년 뒤 전체 교체 공사에 들어가는 식이다.

나무가 썩는 게 아니다. 사람이 나무를 썩게 만드는 것이다.

 

토양 바로 위에 설치된 하지 철물


환경병의 시대, 나무 집을 꿈꾸다

2000년대 초반부터 회사로 들어오는 문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 방 책상과 서랍장을 원목으로 만들려고요. 아토피가 심해서 원목 가구로 바꿔볼까 해서요.”


“새 건물이라 페인트 냄새가 너무 심해서, 사무실 인테리어에 쓸 만한 나무 좀 추천해 주세요.”

그 무렵, 한국 사회는 세 가지 변화가 같은 시기에 겹쳤다. 하나는 아토피 아이들의 급증이었고, 다른 하나는 급격히 변한 식습관 문제였고, 또 하나는 새집증후군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일이었다.

세 현상이 같은 시기에 나타난 건 우연일까. 아파트는 점점 밀폐형으로 진화했고, 실내 생활 시간은 늘어났다. 식탁에는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이 늘었고, 벽 속에는 접착제와 단열재가 들어갔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아직 불분명하다. 하지만 ‘환경성 질환’이라는 담론이 이 시기에 형성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환경성 질환에 대한 담론은 기존 콘크리트 주거 환경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사람들은 자연에서 유래한 천연 재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공식품이 문제니까 유기농으로 먹자.”


“콘크리트가 문제니까 친환경 자재를 쓰자.”

하지만 앞서 본 것처럼, 나무 집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앤절라 홉스가 경험한 것처럼, 잘못 지은 나무 집은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재료 자체의 등급과 품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재료를 얼마나 이해하고 쓰느냐다.

나는 상담할 때마다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비싼 나무가 좋은 나무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정작 중요한 건 나무를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100점을 원하시면 50점은 ‘자재’, 나머지 50점은 ‘시공’을 꼼꼼히 챙기셔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면 독이 되듯, 좋은 자재도 바르게 쓰지 못하면 독이 된다.

공급자의 정직함보다 소비자의 깐깐함

 

강화도 데크를 보고, 마포 현장을 보고 나서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 드라마 속 그 집은 정말 우리가 꿈꾸는 치유의 공간일까.

그 집을 지탱하는 구조와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곳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나무가 썩는 문제와 싸우고, 한국은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문제와 싸운다. 재료는 달라도, 자본의 논리가 주택의 품질을 결정하는 구조는 똑같다.

우리가 어떤 집에 살지의 문제는 어쩌면 취향이 아니라 현실일지 모른다. 미국인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도 그렇게 짓는 인프라가 없고, 한국인은 제대로 된 목조주택을 짓고 싶어도 시공 생태계와 유지관리 비용이 받쳐주지 못한다.

그러니 중요한 건 환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는 일이다.

목조주택을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대로 지으면 콘크리트보다 나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제대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그것을 시공사에게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싼 자재를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다이소에도 있는 법이다.

자재는 말이 없다. 아직은 공급자의 정직함보다 소비자의 깐깐함이 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