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의 문법
안웅기라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이력서를 보니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나운서 시험 낙방, 의전원 불합격, 방송 기자도 안 됐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T1의 최고운영책임자가 되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수십억 원짜리 계약을 성사시켰다니.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알게 된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때로는 운이고, 때로는 타이밍이고, 때로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다.
안웅기가 사우디 왕세자에게 아랍어 손 편지를 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얼마나 간절했을지 상상해 봤다. 20시간 동안 아랍어를 연습해서 편지를 쓴다는 것. 이건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편지를 읽어보셨대요. T1의 비전과 사우디의 비전이 맞다면서 파트너십을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과적으로 그의 20시간은 보상받았다.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 누군가의 작은 노력이 큰 성과로 이어지는 순간들.

치솟는 전기료
한편 우리 회사는 전기요금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2022년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기 시작했고, 목재를 켜고 깎는 공장인 우리로서는 심각한 문제였다. 매달 나가는 전기요금을 보면서 공장장님은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니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셨다.
태양광 발전 설비 도입. 이 프로젝트가 내게 떨어졌을 때,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러웠다. 태양광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 하지만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이런 거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
태양광 업체 사람들과 미팅을 했다. 그들은 전문가다운 태도로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지만, 솔직히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REC와 SMP, kW와 kWh의 차이, RPS 제도, 아크 결함 회로 차단기... 그들의 언어는 암호 같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게 정보 격차구나. 그들에게는 일상용어지만 나에게는 외국어인 것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의지가 되는 새 동료
할 수 없이 AI에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챗GPT에게, 클로드에게, 바드에게. 누구든 답해줄 수 있는 AI에게 물어봤다.
"kW와 kWh의 차이가 뭐야?" "인버터는 왜 필요한 거야?" "PPA 계약이 우리에게 유리한 거야?"
AI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24시간 언제든 답해주고, 같은 질문을 열 번 해도 짜증내지 않고, 내가 이해할 때까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줬다. 인간 선생님보다 더 참을성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AI와 대화하면서 나는 태양광 전문가가 되어갔다. 아니, 적어도 태양광에 대해 기본적인 대화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동상이몽
보고서를 제출한 뒤 안웅기의 기사를 다시 읽었다. 그는 20시간 동안 손으로 편지를 썼고, 나는 일주일 동안 AI와 채팅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둘 다 낯선 언어를 습득했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그의 손편지는 빈 살만의 마음을 움직였고, 내 보고서는... 글쎄, 아직 누구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답은 명확했다. 안웅기는 상대방을 감동시키기 위해 아랍어를 배웠고, 나는 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태양광을 공부했다. 목적의 방향이 달랐다.
그리고 태양광 업체는? 그들은 아예 우리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았다. 전문용어를 남발하며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로 설명하고 갔다. 그 이후로도 상담 만족도 조사 따윈 없었다.

소통을 위한 노력, 진정성
결국 마음을 사는 방법은 하나가 아닌 것 같다. 안웅기는 정성과 시간을 투자해서 상대방의 언어를 배웠다. AI는 무한한 인내심으로 내 속도에 맞춰줬다. 태양광 업체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진정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이것이 현대인의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기계들, 시스템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상황. 그 과정에서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안웅기처럼 20시간이든, 나처럼 일주일이든, 상대방과 연결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조금씩 성장하는 것.
오늘도 마음을 얻는 법을 배운다
커피를 다 마시고 다음 업무를 확인한다. 오늘도 누군가와 소통해야 하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때로는 AI와도 대화하면서.
회사 생활 15년째,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내 마음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상대방의 마음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안웅기의 아랍어도, 내 태양광 지식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불완전한 노력들이 모여서 연결을 만든다.
영업은 결국 마음의 일이다. 안웅기의 20시간, 내 일주일, 그리고 AI의 무한한 인내심이 증명하듯이. 팔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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